ADVERTISEMENT
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악마를 보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정진홍
논설위원

# “아직은 아냐. 조금만 기다려… 난 니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죽일 거야.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움에 벌벌 떨 때 그때 죽일 거야….” 두 해 전 이즈음 극장가를 달궜던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쇄살인범(최민식 분)에게 약혼녀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뒤 이를 복수하겠다고 나선 전직 국정원 요원(이병헌 분)이 복수심에 불타며 내친 대사다. 마찬가지로 전자발찌를 낀 채 아무 집에나 들어가 아이를 유치원 보내고 집안 정리하던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안 되자 때리고 짓찧고 흉기로 난자해 죽여놓고도 태연한 살인마를 향해 졸지에 아내 잃은 남편이 절규하며 한 말이 여기 있다. “범인에게 꼭 한마디 해주고 싶다.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 꼭 고통스럽게 죽으라고 말하고 싶다….”

 #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인 그 남편은 아내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뻔뻔하게 묵비권이나 행사하고 있는 살인마를 정말이지 죽이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법치국가, 인권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대낮에 사람을 난도질해 죽여도 정작 살인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멀쩡하다. 그래서 당한 사람만 억울하다. 아내 잃은 남편은 또 다시 이렇게 절규한다. “어찌해서 이 나라는 죽은 사람 인권은 온데간데없고 죽인 사람 인권만 있나?” 정말이지 그 남편은 스스로 칼을 들고 싶지 않겠나. 마치 영화 속의 이병헌처럼!

 # 여기저기서 난데없는 칼부림이 난무한다. 그것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동시다발적이다.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역 구내에서 공업용 커터칼을 휘둘러 무고한 8명에게 중상을 입힌 의정부역 칼부림 사건을 시발로 20일 오전엔 앞서 언급한 서울 광진구의 주부 살인사건, 21일 새벽에는 술집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쫓기던 중 아무 집으로나 뛰어들어가 1명을 죽이고 4명을 상해한 수원 흉기난동 사건, 같은 날 밤 동네 단골 수퍼에 들어가 다짜고짜로 여주인을 찌른 울산 묻지마 사건, 다음 날인 22일 오후 퇴근길로 분주한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직 회사 동료 2명과 길가던 시민 2명을 막무가내로 찌른 여의도 칼부림 사건까지 지난 일주일은 정말이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무법천지의 공포 그 자체였다.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들이 현장 쫓아 취재하느라 돌아버릴 지경이었고, 마치 영화에서 악령의 지시를 받은 고스트들이 일거에 뛰쳐나온 형국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물론 칼부림을 벌인 그들 가운데는 히키 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대부분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절벽 끝에 다다른 이들이었다지만 그것이 그들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런 범죄자들의 행위를 사회에서 버림받고 격리된 탓으로 에둘러 돌리는 것이 문제를 더 키웠는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부모가 이혼했다고, 동료에게서 왕따당했다고, 돌봐주는 이 없다고 다 칼 들고 설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발찌를 채우면 뭐하나? 아무나 찌르고 감방 들어가 나라에서 주는 밥 먹겠다는데 어찌 할 방법이 없지 않는가. 왜 이토록 대담해졌는가? 법이 무섭지 않고 형벌이 고만고만하기 때문 아닌가.

 # 우리나라는 사실상의 사형제도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지금 이 마당에 사형제도의 존폐를 논란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대로 놔둘 참인가. 미국의 경우엔 1972년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가 흉악범죄가 크게 늘자 4년 만인 76년 사형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전과가 일, 이범도 아니고 십수범이 되어도 그들은 두렵지 않다. 절대로 죽지는 않으니깐. 수십 명을 찌르고 죽여도 그렇게 한 이는 멀쩡히 살아있다. 결국 이 끝없는 난동을 저지시킬 것은 사형집행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심리적 위축, 아니 위협을 느낀다. 그만큼 우리사회는 겁먹고 있다. 하지만 죄의 대가는 치르게 해야 한다.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더 이상 인권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사치다.

정진홍 논설위원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