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툼 레이더(2001)

중앙일보

입력

'툼레이더'를 시사회에서 보고난 뒤 재미있는 반응들.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단 말인가?" 영화를 함께 본 누군가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글쎄, 그런대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막상 영화 뚜껑이 열린 뒤 시사회를 본 관계자들 반응은 구성이 엉망이다, 영화가 길게 느껴진다, '인디아나 존스' 후속편같다, 등등 불만스런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툼레이더'는 별로 실망스럽지 않은 영화였다. 대단한 영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오락용으로 보고 즐기기 부담없는 정도다.

어떤 이는 "왜 상영 시간 내내 안젤리나 졸리만 보이는 거냐"라고 묻기도 한다. 상영 시간 내내 안젤리나 졸리의 눈부신 육체를 감상하는게 좀 부담스럽단 거다. 영화에서 그녀가 내내 등장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원작인 게임 '툼레이더'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는 다름아닌 라라 크로포트라는 캐릭터 탓이었음을 상기해보자. 게임 캐릭터로서 그만큼 섹시하고 활동적인 이미지의 여전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툼레이더'는 라라 크로포트라는 게임 캐릭터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영화로 옮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던 것. 영화는 이점에서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영화 '툼레이더'는 기본적인 설정은 게임과 흡사하며 줄거리가 그리 복잡하진 않다. 라라 크로포트는 아버지 크로프트경이 남긴 시계를 발견한다. 라라는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이야기, 즉 시간과 우주를 여는 열쇠인 고대 시계를 찾아다녔다는 비밀 조직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시계의 비밀과 운석결정체로 만들어진 트라이앵글이 비밀의 실마리임을 깨닫는다. 비밀조직은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는 때를 기다려 시간을 정복하려는 것. 라라는 조직의 음모에 맞서고 아버지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캄보디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라라는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고 놀란다.

이 영화의 감독은 '콘에어' 감독이었던 사이몬 웨스트. 사실 '콘에어' 시절에도 그런 기미가 보였지만 사이몬 웨스트 감독은 영화 서사를 그럴듯하게 짜맞추는 재주는 거의 없는 인물이다. 주로 상업광고물 제작을 주로 했던 경력에서 알수 있듯 그는 화려한 이미지와 역동적인 액션을 선호하는 편. '툼레이더'에서도 비슷한데 마치 게임 스테이지가 조금씩 올라가듯 차츰 난이도가 상승하면서 라라 크로포트의 화끈한 액션이 펼쳐진다. 인상적인 것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액션장면들. 고대 유적들이 살아움직이는 장면들을 보노라면 거의 숨막힐 지경이다. 디지털 기술의 쾌거다. 이밖에도 안젤리나 졸리가 거의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벌이는 여러 액션장면들은 황홀한 느낌마저 남긴다. 이 대목에서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케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영화에서 약점을 찾으라고 하면 여러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몇가지 엉성한 이야기의 흐름도 있고(예를 들어서 라라가 굳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트라이앵글을 완성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것) 화려한 특수효과와 안젤리나 졸리의 늘씬한 몸매를 빼면 영화에선 다른 매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툼레이더'는 이런 약점이 역으로 강점도 되는 영화다. 안젤리나 졸리만큼 스크린으로 한시간 반 내내 봐도 질리지 않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이야기는 분명 어색하고 엉성하지만 오히려 너무 복잡하지 않으니 영화를 즐기기에 부담없는 정도에 그친다. '툼레이더'는 영화가 게임을 닮아가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툼레이더'는 사용료가 조금 비싼 신종 게임과 같다. 그게 '툼레이더'의 진짜 매력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