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가 가진 것들이 나를 설명하는 시대,우린 뭘 갖고 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4호 21면

내가 만약 결혼이나 중매 회사 사장이라면 남녀 회원들에게 반드시 ‘자신이 아끼는 브랜드 리스트’를 적으라고 할 것이다. 브랜드는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수십 개의 브랜드를 두 사람이 늘어놓은 뒤 교집합이 많을수록 그와 나는 비슷한 패션과 입맛과 취미와 소비 수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건 키와 몸무게, 직업과 연봉 같은 스펙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다. 나이키를 신는가 뉴발란스를 신는가, 혹은 셔츠 포켓에 중후한 몽블랑이 꽂혀 있는가 아니면 발랄한 라미 만년필의 U자형 클립이 꽂혀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라는 미니벨로 스트라이다를 타는가 완벽하게 접히고 주행성까지 갖춘 브롬톤을 타는가, 돌체 앤 가바나의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끼는가 아니면 레이밴 에이비에이터를 무심하게 걸쳤는가.

컬처# : 브랜드의 가치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당신의 감수성, 문화적 취향, 심지어 당신의 생활철학과 그것을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가졌는가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담고 있다. 그가 가진 각각의 브랜드는 서로 어우러지며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일론을 소재로 한 프라다를 즐겨 입는 사람은 화려한 샤넬을 즐겨 입는 사람보다 더 실용적인 삶과 미니멀리즘의 감수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말 없이 웅변한다. 결국 이 시대에 브랜드는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그 무엇에 가장 가깝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그이는 딱 살아 있는 DKNY야”라고 말할 때 이보다 더 한 사람의 느낌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최근 발간되고 있는 브랜드 ‘매거진 B(제이오에이치)’ 같은 잡지는 단순히 물질적 ‘가치’를 지닌 비즈니스와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브랜드가 아니라 고유한 아우라를 지닌 문화 콘텐트로서 브랜드를 다룬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표방하는 이 잡지에서는 기존 럭셔리 매거진들과는 다르게 한 권에 하나의 브랜드만 골라 통째로 그 브랜드의 역사와 문화, 애용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다룬다. 브랜드가 그 속에 담고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한 브랜드 안에 담겨 있는 철학과 과학, 그 브랜드의 제품을 손으로 잡고 쓸 때의 느낌, 브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만든 사람의 손길과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의 가방 안에 어떤 브랜드들이 담겨 있는지 알아본 코너들이다. 그 브랜드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다른 일상 소품들은 어떤 브랜드들로 채워 나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낸 것이다. 같은 브랜드는 알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동질감을 자극하며 같은 레벨의 커뮤니티로 나를 편입시킨다. 그러니 브랜드는 남들과 다르고 싶은 ‘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남들과 같아지고 싶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레이밴 선글라스를 얼굴에 걸치면 그 사람은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더티 해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케네디와 오바마 대통령,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 만들어낸 수십 년 이미지의 역사의 전당에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 가치로 젊은이들의 소비 성향을 자극하는 애플의 아이 시리즈 같은 대성공작을 보면서 이처럼 한 시대의 정신과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가지는 것이 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우리 브랜드는 과연 어떤 게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남들보다 빠른 기술과 기능만을 강조하며 이성에 호소하던 1980년대부터 제품의 디자인과 그 속에 담는 콘텐트를 자극하는 감성과 문화라는 가치를 앞세웠던 애플처럼, 성공한 브랜드는 시대가 미처 충족시키지 못한, 그러나 대중들이 지향해야 하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선 개인이나 정치인, 중소기업, 대기업 혹은 국가 이미지 할 것 없이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때다. 그렇다면 싸이의 노래 속에서마저 실체 없는 허세의 대상으로 조롱받고 있는 ‘강남’의 문화는 무엇인가? 섹시하고 절도 있는 춤의 걸그룹 혹은 보이그룹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한류’는 또 어떤가? 그저 한두 개의 유행상품이 아니라 문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선 우리 문화상품에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그걸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