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계의 `세계 최초' 남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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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발표한 ''두루마리식 스피커 세계 최초 개발'' 발표에 대해 때아닌 `세계 최초''에 대한 설전이뜨겁다.

KIST의 발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서울대의 한 교수와 국내 수입업체가 `세계 최초가 아니다''라며 반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 이 서울대 교수는 "KIST가 발표한 것 처럼 PVDF 필름을 이용한 스피커는 PVDF필름을 개발한 60년대부터 실험에 성공한 것"이라며 "PVDF 필름은 이미 국내에서도센서용으로 수년전부터 일반화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PVDF를 이용한 스피커나 센서가 이미 상용화 돼 있고 스피커의 경우 저음 대역에서 음질이 좋지 않으며 풍선모양으로 만들어 공중에 띄워 기업들의 이벤트 홍보용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KIST측은 "PVDF를 스피커로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세계 최초라는 것이아니라 스피커의 내구성과 저음대역에서의 음질을 향상시킨 본격적인 제품"이라며 "필름에 전극을 단단히 붙일 수 있는 기술이 세계최초"라는 설명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PVDF 필름이 고가인데다가 KIST측이 사용한 백금전극역시 값이 비싸 아무리 내구성이 뛰어나더라도 상용화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또 필름 자체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필름의 고유진동수와 비슷한 음역의 소리는 사라질 확률이 높아 두루마리식 스피커는 일반 스테레오 오디오용으로도 적합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의를 제기한 서울대 교수는 "KIST측의 발표는 자동차의 용접기술을 개발한 것을 마치 자동차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과학 분야의 홍보가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최초''를 남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과학계의 연구성과 발표에는 유독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말로 세계 최초일 수도 있고 언론을 통한 보도를 의식해 `좀 더 눈길을끄는'' 제목을 달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같은 행동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조급증''의 다름 아니다.

또 세계 최초 남발현상은 언론 등에 회자(膾炙)돼야 정부나 기업들로 부터연구프로젝트를 쉽게 따낼 수 있다는 속설이 공공연히 통하는 국내 과학계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최근 과학계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관심사였던 인간게놈지도 완성은 굳이 `세계최초''라는 수사를 달지 않고도 학자들의 연구 능력과 국가의 과학력을 과시했던 좋은 선례가 아닐까.(서울=연합뉴스) 강훈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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