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재활 이렇게 한다] 15. 대교 눈높이 교사 최문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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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학습지 교사로 활동 중인 최문자(39)(monriver11@yahoo.co.kr)씨씨도 외환위기가 이끌어 낸 생활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봄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崔씨의 삶은 바뀌었다. 생계를 위해 어렵사리 차렸던 슈퍼마켓 운영에 실패한 후 대학전공(영문학)을 내세워 외국인 업체와 무역업체 등에 여러 차례 노크 했지만 번번이 나이와 주부란 한계에 부닥쳤다.

崔씨는 "밤늦게까지 가게를 돌봤지만 금고가 통째로 도둑을 맞아 가게문을 닫게 됐을 때는 '이제 바닥인생으로 추락하는 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꼈다" 고 한다.

◇ 3백만원 들고 상경〓남편이 부산에서 운영하던 전동공구 수입 업체는 매월 2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수익도 짭짤한 기업이었다. 집도 세 채나 장만하는 등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후 물건값으로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회사는 벼랑에 몰렸고, 회사를 건지려고 막판에 친인척에게 빌린 돈마저 갚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도망치다시피 현금 3백만원을 달랑 들고 상경한 가족들은 친구와 친인척 집을 전전하며 경제적 독립의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남편이 신용불량자로 분류된 데다 실의에 빠져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때 친정식구들의 도움으로 서울 외곽에 슈퍼마켓을 차렸다. 그러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도둑을 맞아 6개월만에 가게문을 닫아야했다. 다시 빈털털이가 됐고 도움을 줬던 친인척들에 대한 면목도 안 섰다.

崔씨는 "사업가가 부도가 나면 온 집안이 쑥밭이 된다는 이야기를 실제 경험했다" 며 "아이(1남1녀)들이 어릴 때 상처를 받은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고 말했다.

◇ 학습지 교사로 변신〓돈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 앉게 된 崔씨 가족은 서울에 있는 언니 집에 신세를 지며 부부가 다시 취업전선에 나섰다. 그때 친구의 소개로 1999년 ㈜대교에 들어갔다.

崔씨는 면접과 소양시험에 합격해 학습지 교사 자리를 얻었을 때 "마치 날아 갈 듯한 기분이었다" 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 2백 여명의 어린이와 중.고생을 가르치며 한달 2백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영어.국어.한자를 가르친다.

崔씨는 "오후 12시20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지만 모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고 말한다. 지난 3월부턴 인하대 어학당에서 기초생활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40대에 인생을 다시 설계〓崔씨는 요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친인척들 에게 빌린 돈을 갚은 후 조그만 영어학원을 차릴 계획이다. 그럴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근 남편이 중소 무역업체에 취직해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고 아이들도 별 탈 없이 크고 있어 주말께 가족 나들이도 계획하고 있다며 崔씨는 활짝 웃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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