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네티즌들, 황혼을 뜨겁게!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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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원동에 사는 오영자씨(64)는 유니텔 실버 동호회인 ‘실버타운’ 회원이다. 통신상의 왕성한 활동으로 실버타운 여성회원들의 ‘대모’로 불린다. 97년 컴퓨터 회사의 무료 강좌를 통해 처음 컴퓨터를 배웠다. 60이 넘어서 컴퓨터를 배운 것이다. 곧 컴퓨터를 구입하고 98년부터 통신에 가입, 동호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로 인터넷 사용 3년째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오씨는 개인 홈페이지()도 가지고 있다. 같은 실버타운 동호회 회원이 만들어준 것이다.

젊었을 때 기타 연주를 하기도 했던 오씨는 음악 사이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내려받아 듣기도 하는 음악 마니아다. 개인 홈페이지에도 좋아하는 음악들을 올려놓았다. 캐나다에 유학가 있는 아들과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중국에 사는 통신 친구와 메일을 주고 받기도 한다. 오씨는 “세상 참 좋아졌다”며 “하루라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궁금할 정도로 인터넷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실버타운의 부 시솝을 맞고 있는 이재호씨(58) 역시 뒤늦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웠다. 이씨는 97년 IMF를 맞아 잠시 재충전을 위해 쉬면서 컴퓨터를 배운 것.

국영기업체의 간부까지 지냈던 이씨지만 컴퓨터를 배우는 일만은 쉽지 않았다.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컴퓨터에 대해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아빠는 몰라도 된다’며 무시해 버린 것. 이씨는 “그 말이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학원과 독학을 통해 결국 혼자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처음에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마치 요술상자처럼 느껴졌다”며 “뭐 하나 잘못 누르면 컴퓨터가 고장나는 건 아닌가 해서 키보드도 마음 놓고 누르지 못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오히려 자녀들이나 사무실의 여직원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줄 정도의 수준이됐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박은진씨(48)는 ‘실버타운’에서는 ‘청년’축에 속한다. 나이가 젊다보니 다른 회원들에 비해 컴퓨터 실력도 수준급이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도 한 박씨는 컴퓨터를 배운지 2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컴퓨터 그래픽과 홈페이지 제작까지 자유자재로 할 정도의 컴퓨터 실력을 갖고 있다.

물론 박씨도 쉽게 컴퓨터를 배운 것은 아니다. 박씨는 “혼자서 몇 번이고 책을 보고 모르는게 있으면 컴퓨터 동호회 등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하거나 프로그램 만든 회사를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했다”며 “발로 뛰며 컴퓨터를 배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실버타운 동호회에 올라온 회원들의 글을 모아 CD롬으로 된 멀티미디어 회보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인의 홈페이지는 없다. 박씨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았다”고 말했다.

김국이씨(49)는 인터넷을 공부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일본어에 관심이 많아 일본어 동호회 활동까지 하던 김씨는 최근 뒤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문학 관련 사이트와 일본어 사이트,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 사이트를 주로 드나든다. 나이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유니텔 ‘실버타운’에서 만난 통신 친구들이다.

‘원조교제’나 ‘불륜’ 떠올리기도

50, 60대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하면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 그 또래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영자씨는 “주변 사람들은 한 번 배워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배우려고 하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씨도 “주변 친구들이 나이 들어 그런 걸 배워서 뭐 하느냐고 얘기한다”며 “하지만 속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신이나 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아직 좋지 못한 것을 느낄 때는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박은진씨는 “통신 동호회에서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주위에서는 ‘원조교제’나 ‘불륜’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아직까지 노년층들의 통신문화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노년층들의 동호회들은 오프라인 만남보다 온라인 만남을 위주로 통신 활동을 하고 있다. ‘실버타운’의 경우도 1년의 한 두 번씩 하는 정기모임 이외의 개별적인 모임들은 많이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호회 설립 목적 자체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사회봉사 활동이며 건전하고 깨끗한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이 동호회에서는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장애인 수용시설에 지원하기도 했다. 천리안 ‘원로통신 동호회’도 실버들을 위한 대표적인 동호회 중 하나다. 이 모임에서도 사회봉사 활동은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

이 동호회의 대표 시솝을 맞고 있는 양철배씨(50)는 “매달 20만원씩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서 중학교 1학년 소녀가장을 돕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봉사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실버 커뮤니티들

55세 이상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5%인 7백20만명선. 하지만 이 세대의 인터넷 이용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노인들만의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유니텔의 ’실버타운‘ 이외에 천리안의 원로통신 동호회 등이 PC통신 상의 대표적인 실버 인터넷 동호회들이다. 유니텔 ‘실버타운’은 지난 99년 6월 설립됐으며 현재 1백3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리안 ‘원로통신 동호회’는 현재 3백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40세 이상으로 회원들의 폭이 넓은 편이다. 78세의 회원이 최고령으로 가입되어 있다.

그밖에 다음카페 등 인터넷 사이트에 일부 실버 커뮤니티가 개설되어 있으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음카페의 일노복 클럽(http://cafe.daum.net/ilnobok)은 지난 해 9월 개설돼 현재 2백5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표적인 실버 커뮤니티. 컴퓨터 교육을 같이 받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60대초보(http://cafe.daum.net/6070)는 지난 해 6월 설립, 현재 2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멋진 황혼을 위해 서로 의지하고 힘을 주기 위한 친목모임이다.

그밖에 희나리의 뜰(http://cafe.daum.net/hinary)은 지난 해 11월 설립됐지만 아직 현재 회원 수는 11명에 불과하다. 시, 풍경사진, 그림 등 자료를 나누며 자녀들이 함께 활동하는 카페다.

젊은 사람들처럼 노인들에게도 인터넷은 중요한 만남의 공간이다. G세대(Golden Generation) 전용 사이트를 표방하고 있는 프롬50(http://www.from50.com)에서는 노년층들을 위한 정보 제공과 함께 나이들어 혼자된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대화방과 만남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프로필을 직접 올리도록 되어 있다.

프롬50의 이정민 기획실장은 “아직까지 노인들이 직접 인터넷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이트 자체가 활성화 되지는 않은 편”이라며 “주로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직접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프로필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버 커뮤니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컴퓨터를 배운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거나 젊었을 때 문학이나 음악 등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들의 온라인 활동도 자신들이 직접 창작한 시나 수필 등을 게시판에 올리는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50, 60대에 인터넷을 처음 배운 실버 네티즌들. 이들은 인터넷으로 인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예전에는 말이 안 통하던 젊은 사람들과도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정신적으로도 젊어진 느낌이다. 오히려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과 대화가 안될 지경이다.

취재하면서 만난 50, 60대들은 모두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보였다. 왜 그렇게 젊어보이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 때문에 10년은 젊어진 것 같습니다.”

정재학 기자(zeffy@joongang.co.kr) / 사진 백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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