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이 시대 제2의 성은 남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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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최근에 들은 ‘썰렁 유머’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사망하자 의사들이 사망선고를 하고 시신을 옮기라고 한다. 이에 어머니와 아들이 옮기는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덜컹하면서 아버지가 깨어났다. 아버지가 “여보, 내가 살아났소”라고 하자 어머니 말씀. “아니에요. 당신은 죽었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는 아무리 아내에게 얘기해 봐야 안 들어주니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아, 내가 살아났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제발 어머니 말씀 좀 들으세요.”

 유머치곤 참 처절하다. 어느덧 가부장적 권위는 가정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아들 세대도 지겨워한다는 것을 드러내니 말이다. 실로 수천 년 동안 확고했던 남성우월주의는 이 시대에 이르러 허망하게 종언을 고했다. 그런데 여전히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남성들이 시쳇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하는 바람에 어처구니없는 ‘시추에이션’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을 비하하는 욕지거리를 해놓고 자기가 투사라고 착각하는 지질한 남자 국회의원도 있으니 말이다.

 “박근혜 의원 … 그년…” 발언을 하고, 더 세게 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 아무리 국회의원이 막나가는 걸로 이골이 났다지만 대통령 후보에게 이런 막말을 한 예는 여태 없었다. 그러면 당한 쪽에서 “이종걸, 그 X 세상물정 모른다”며 막말 대응으로 나와 남녀 간 욕지거리 대결 한 판 벌여보자는 속셈에서 저지른 일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당 여성의원조차 비판하는 걸로 봐선 번짓수를 잘못 찾았다.

 시대와 불화하는 남성의 사례는 이런 ‘지질함’뿐이 아니다. 좀 ‘오버’하는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살인·성폭력 등 강력사건의 배후엔 남성우월주의 상실에 따른 남성들의 ‘아노미’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올 들어 미디어에 떠들썩했던 강력범죄들은 대부분 남성이 여성이나 어린이를 공격한 범죄였다. 최근의 울산자매 살인사건, 올레길 여성 살인사건, 통영 아름양 살인사건, 수원 오원춘 사건 등. 현재 통계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공격 빈도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최근 들어 남성의 여성 상대 범죄의 수법과 결과가 더욱 흉포해지고 있다고 체감으로 느낄 뿐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살인사건에서 ‘가정불화’를 동기로 꼽은 사건이 2009년까지도 63건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119건이었다. 이런 가족범죄에는 억압적인 아버지가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범죄가 아니더라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최근 들어 남편 은퇴 전후의 황혼이혼(결혼 20년 이후 이혼)이 서울 이혼인구의 27.7%를 차지하는데, 대부분 여성 쪽이 이혼을 제기한단다. 또 최근 21만여 명에 이르는 남성 독거노인들의 영양결핍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평균수명도 남성이 여성보다 7년 정도 짧다. 『노화혁명』(박상철 저)이라는 책에선 “우리나라 남성의 낮은 장수도는 사회문화의 문제로, 고령층일수록 남성우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위도식하며 문화체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윤리학자 다케우치 야스오 교수는 저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이 발전한 나라에선 남녀가 각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고, 이럴 땐 여성이 더 자족적으로 살고 우월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 제2의 성(性)은 남자”라고 했다.

 이렇게 세상은 변했다. 여성에게 욕지거리하며 폄하한다고 여성이 낮아지지 않는다. 여성을 공격하고, 시대를 불평한다고 세상이 남성 앞에 예전처럼 유순해지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여성들이 수천 년 동안 억압됐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권리 획득을 위해 20세기 내내 투쟁하며 힘겹게 달려온 결과다. 여성이 스스로 쟁취한 것을 다시 내놓을 리 없다. 이젠 남성 차례다. 시대와 불화하지 않고, 새 시대에 조화할 수 있는 성 역할과 위치를 찾아 ‘신(新)남성인류’의 질서를 만드는 게 21세기 남성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