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양들의 침묵' 속편 '한니발'

중앙일보

입력

살갗을 조이는 지독한 공포는 영화가 보여주기 보다는 관객의 상상에서 나온다.

'양들의 침묵' (1991년) 은 그런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영화였다. 하지만 속편 '한니발' 은 전작처럼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감춤' 의 미학을 보여준 조너선 드미 감독과는 달리, 보이고 싶은 것은 다 내놓은 채 엽기적인 포장술로 자극의 강도를 한층 높였기 때문이다.

'양들의 침묵' 이 한니발 렉터 박사와 FBI요원 클라리스의 팽팽한 심리전을 토대로 했다면 '한니발' 은 그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식인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스콧 감독은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비틀었다. '글래디에이터' '에어리언' 등 전작들을 볼 때 아무래도 그는 섬세한 심리전보다 섬뜩한 장면을 주저없이 노출하는데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니발' 을 고전이 된 '양들의 침묵' 의 그늘에서 떼어내 곱씹어보면 감독의 능숙한 장면 연출과 상상하기 어려웠던 발직한 엽기, 그리고 한스 짐머가 골라낸 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흥미로운 공포 영화다. 특히 '분노의 역류' 에서 음악이 자아낸 공포의 진수를 보여준 짐머는 이 영화에서도 관객을 효과적으로 옥죈다.

10년전 살인마 한니발(앤서니 홉킨스) 의 도움을 받아 납치된 상원의원의 딸을 찾아내 명성을 얻게 된 FBI요원 클라리스(줄리언 무어) 는 마약소굴 소탕작전을 수행하던 중 아기를 안은 범인을 총으로 쏘아 좌천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한니발의 희생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메이슨(게리 올드만) 이 클라리스에게 한니발을 잡아달라고 제의하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인다. 한니발의 흔적을 찾아 골몰하는 클라리스, 자신에게 클라리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한니발. 한니발은 클라리스와의 재회를 위해 오랜 은둔 생활을 기꺼이 접는다.

눈빛으로 드러나는 악마적 본성으로 클라리스(조디 포스터) 와 교감했던 앤서니 홉킨스는 능수능란하게 대상을 죽이는 살인마로 좀 '무식' 하게 변했지만 여전히 섬뜩하다.

사람을 죽일 때만 눈이 번뜩이는 이류 공포영화의 주인공들과 한니발이 다른 이유는 단테의 시를 외우는 우아한 자태에서도 살인마의 기(氣) 가 물씬 묻어나기 때문이다.

조디 포스트의 자리를 메운 줄리언 무어는 한니발의 득세로 설 자리가 좁아져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내내 조디 포스터의 고통스런 눈 연기가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줄리언 무어를 탓할 수도 없다.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가 됐다기 보다 역할 자체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탓이다. 대신 게리 올드만이 엉망진창이 된 얼굴의 메이슨으로 등장해 한니발과 대결구도를 이루며 더 부각된다.

이 영화가 화제를 뿌렸던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벗겨낸 후 뇌를 잘라 요리하거나 식인 멧돼지떼가 사람의 내장과 얼굴을 뜯어먹는 엽기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수입심의 과정의 소란함만큼 다분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국내 개봉시 뇌 절개 부분 등이 검게 처리돼 영화팬들의 불만을 살 것 같고 중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좀 지루하다 싶은 느낌을 준다.

미국 흥행성적은 1억6천만달러로 '양들의 침묵' 보다 3천만달러 많은데 이는 몇가지 '볼거리' 가 제공하는 엽기코드의 개가인 듯. 28일 개봉.

<▶NOTE

끔찍한 이야기 속에 사랑 한자락이 비친다. 한니발이 클라리스를, 아니 그녀가 그를.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쉽게 내려질 분간은 아니지만 '엽기적인' 심미안이 있다면 이 영화를 멜로라 부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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