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 탐험 (29) - 술과 메이저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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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에 앞서 1871년에 창설된 내셔널어소시에이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로의식의 결여였다.

선수들은 도박사들과 짜고 승부조작을 밥먹듯이 했으며, 구단들은 남는 게 없는 원정경기를 취소시키기 일쑤여서 일정은 엉망이 됐다.

그라운드에서 이뤄지는 술취한 투수와 타자의 '주정 대결'도 볼거리였다. 결국 내셔널어소시에이션은 5년만에 붕괴했다.

이에 내셔널리그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윌리엄 헐버트는 리그를 엄격한 청교도주의와 결부시켰다. 구장내에서 맥주 판매를 금지시켰으며, 일요일에는 경기를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술과 관련된 가장 재미있는 일화는 1974년 6월 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구장에서 있었던 '10센트 맥주의 밤' 행사였다.

당시 인디언스는 팬서비스 차원에서 그날 경기만큼은 맥주를 단돈 10센트에 팔았는데, 관중 전체가 술에 잔뜩 취하게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경기는 5회말 술에 취한 팬들의 그라운드 난입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현재 빅리그의 구장에서는 맥주를 팔고 있다. 단 병이나 캔이 아닌 컵에 담아서 판매한다. 이는 1949년 8월 21일 필리스의 샤이브파크에서 벌어졌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뉴욕 자이언츠전에서 일어난 심판테러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우승경쟁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필리스 관중들은 9회초 중요한 상황에서 오심으로 팀이 패전의 위기에 몰리자 자기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라운드 안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선수들은 번개같이 사라졌지만, 심판들은 무수히 날라오는 병과 깡통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이 사건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병이나 깡통은 경기장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게 됐다.

금주주의자의 대표적인 선수는 '살인타선' 시절 뉴욕 양키스의 1번타자였던 얼 콤스다. 콤스는 "술을 먹지 않고서는 양키스에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동료들의 협박(?)과 '호걸' 베이브 루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친 선수도 있다.

99년 매니 라미레스(보스턴 레드삭스)가 도전했던 한시즌최다타점기록(191)의 소유자는 통산최다타점의 행크 에런도, 5년동안 평균 160타점을 기록한 루 게릭도 아닌, 다소 생소한 이름의 핵 윌슨이다.

윌슨은 노크볼을 담장 바깥으로 넘길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191타점도 그렇거니와 1930년에 기록한 56개의 홈런은 그해 베이브 루스가 날린 49개보다도 7개나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윌슨의 야구인생은 1930년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윌슨은 그해 겨울부터 본격적인 폭음을 시작했다. 그 후 5년동안 268타점에 머무른 윌슨은 "술만 안마셨더라도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깰 수 있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1934년 3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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