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생큐 블레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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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사인 볼트(오른쪽)가 6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 육상 100m 결승에서 가슴을 쭉 내밀며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볼트는 9초6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로이터=뉴시스]

“올림픽 대표 선발전 때 요한 블레이크에게 두 차례 진 것이 나를 일깨웠다. 마치 그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올해 올림픽이 열리는데, 넌 준비됐니’라고 묻는 것 같았다.”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가 6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결승에서 9초63의 올림픽 기록을 세우고 우승을 차지한 뒤 한 말이다. 볼트가 금메달을 차지하기까지는 나란히 자메이카 국기를 달고 뛴 요한 블레이크(23)의 영향이 컸다. 볼트의 훈련 파트너 출신인 블레이크는 어느덧 훌쩍 성장해 볼트를 채찍질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6월에는 볼트를 꺾으며 국가대표 선발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도 볼트엔 미치지 못했으나 9초75라는 개인 최고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해 7일 시작되는 200m 예선에서 치열한 대결을 예고했다.

 라이벌의 존재는 볼트를 4년 전과 다른 선수로 만들었다. 피니시 자세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결승점을 지나기 한참 전부터 가슴을 두드리는 세리머니를 하며 여유를 보였다. 당시 9초69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좀 더 진지하게 임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평도 많았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결승점까지 쉼 없이 달렸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비로소 양팔을 하늘로 뻗는 ‘볼트 세리머니’를 펼치고 팬들과 악수를 나누는 등 예전의 볼트로 돌아왔다.

 그래도 볼트는 역시 볼트였다. 올림픽 100m 2연패를 달성하며 금메달 사냥을 시작했다. 특히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자메이카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00·200m 모두 블레이크에게 패한 데다 다리에 부상을 입는 등 불안한 전조를 보였지만 이를 딛고 일어섰다. 이날 경기에선 단 한 가지, 자신이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9초58의 세계신기록을 경신하지 못했다는 점만 아쉬웠다.

 ‘늦은 스타트-폭발적 가속’이라는 공식도 예전과 똑같았다. 이날 볼트의 출발 반응 속도는 0.165초. 4년 전 베이징 100m 결승 기록과 같은 ‘평범한’ 스타트였다. 1m96㎝의 큰 키로 인해 스타트가 약점인 데다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 100m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한 아픈 기억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큰 키를 바탕으로 한 롱스트라이드 주법은 이러한 약점을 상쇄했다. 긴 다리를 이용해 41걸음 만에 100m를 주파한 볼트는 최고 시속 45㎞의 스피드를 자랑했다. 30m부터 선두로 나선 뒤 50~60m 구간부터는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2위 블레이크는 46걸음, 3위 저스틴 게이틀린(30·미국)은 44.5걸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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