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동자금, 생산자금으로 흡수할 대책 강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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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중자금 흐름이 심상찮다. 국채 등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돈이 단기자금에 몰리면서 부동(浮動)자금화하고 있다. 국채 금리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심지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하루짜리 자금에 적용되는 기준금리(3.0%)보다 낮은 기이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또 몇몇 우량 대기업의 회사채도 연 3% 이하 금리로 발행된다고 한다. 우리 경제에서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수익은 적더라도 손해 볼 가능성이 작은 안전자산에 돈을 묻어두겠다는 심리다.

 단기 금융상품에 돈이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표적인 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잔액이 최근 6개월 새 30% 가까이 늘었다. 후일 불확실성이 걷히면 좋은 곳에 투자하겠다고 대기하는 돈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한 대응이다. 유로존 위기가 여전하고, 세계경제는 불황의 늪으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 경제 역시 상당기간 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선 누구라도 이렇게 자금을 굴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지금은 투자할 생각 말고 현금으로 갖고 있어라”고 조언하고 있다.

 문제는 나라 경제가 받는 타격이다. 모두 다 자기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사회 전체는 파국을 맞는다는 얘기다. 당장 몇몇 우량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는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돈 가뭄 현상은 대단히 심각해진다. 회사채 발행도 못하는 데다 은행 돈을 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단기자금이 많아지면 기업이 투자자금으로 쓸 돈도 줄어든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도 투자가 꿈쩍하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칫 장기 불황에 빠지기 쉽다. 물론 정부로선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부동자금을 생산자금으로 흡수하고, 돈 가뭄에 허덕이는 기업들의 자금난을 완화할 방안은 강구돼야 한다. 시중자금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