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자산 증여해도 가치 올랐으면 과세” 법원, 편법 상속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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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자손들이 주주로 있는 회사에 건물을 증여해 재산 가치가 올랐다면 ‘포괄증여’로 봐 과세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회사를 통한 재산의 편법적 증여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 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조일영)는 비상장법인 H사 주주 지모씨 등 2명이 “증여세 등 2억 3000만원을 취소해 달라”며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지씨 등의 할아버지는 2006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3층 건물을 지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증여했다. 회사는 63억원 규모의 이익을 회계상 이익금에 포함시킨 뒤 법인세 15억6000만원을 신고·납부했다.

 하지만 서울지방국세청은 건물증여로 회사의 주식가치가 증가한 부분을 자손들이 증여받은 것으로 판단해 증여세 1억4000만원을 포함해 세금 2억3000만원을 더 부과했다. 이에 지씨 등은 서울청의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했다가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개정 상증세법상 증여는 거래의 명칭·형식·목적을 막론하고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재산을 타인에게 이전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주주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할아버지가 회사에 부동산을 증여하는 방법으로 주식의 가치를 높여놨고 이로 인해 증여 전후의 차액만큼의 이익이 자손들에게 증여됐으므로 과세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주식가치 차이를 대상으로 과세하는 방식은 객관적·합리적이지 않다”며 부과한 증여세 1억4000만원은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회사를 통한 편법적 재산증여 및 경영권 승계를 제어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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