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번영의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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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34면

특강차 연단에 서면 나는 가끔 청중을 향해 짓궂은 질문을 한다. “선생과 부인의 관계는 상호협력 관계이신가요, 아니면 갈등 관계이신가요?” 공개석상에서 이런 사적인 질문을 접한 청중은 답하기를 주저하며 불편해한다. 그러면 나는 넌지시 이렇게 정리한다. “남녀가 부부로 만나 살다 보면 쉴 새 없이 갈등 요인이 발생합니다.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부부 관계는 상호협력 관계가 아닐까요?” 그러면 비로소 안도하듯 청중은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렇다. 사람 간의 관계가 그러하듯, 세상 사는 이치가 두부모 자르듯 명쾌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의 양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보자. 양국 간에는 늘 대립과 긴장이 뉴스거리로 등장하기 때문에 본질이 갈등인 것 같다. 그러나 그 관계의 저변에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불리는 놀라운 수준의 상호 의존과 협력이 존재한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생산의 중국과 금융의 미국이 호혜적인 국제분업의 질서를 형성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편 북유럽과 남유럽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배치되어 유로존(Eurozone)이 두 동강 날 듯 심각한 불안을 겪고 있다. 현재의 통화동맹 수준을 넘어 은행통합과 재정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하지만 동맹의 해체가 그 누구에게도 이익일 수 없다는 인식의 뿌리도 강고하므로, 느리긴 하지만 유럽의 정치권이 반걸음씩 해법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개인 간에도 국가 간에도 갈등 이상으로 협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므로 위험과 불안 속에서도 평화와 번영의 공식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이 시대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라는 반론이 당장 제기될 수 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선진 경제권이 온통 악재투성이 아닌가?

종래 금융위기는 개도국에 고유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개도국의 과잉 저축을 끌어다 금융의 과잉을 초래한 선진국이 스스로 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은 아무리 재정과 통화를 풀어도 실업률이 8%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고, 유럽 각국은 청년 실업률이 20~50%로 치솟아 역사 속에 묻혀버리는 세대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잠재성장률 하락, 소득 양극화, 중산층 해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지난 30년간 세계의 틀이 바뀌어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그 빈 공간에 세계화 체제가 들어섰다. 그런 가운데 소련과 동유럽, 중국, 인도 등지에서 계획경제의 사슬에 묶여 있던 약 30억의 인구가 시장경제에 올라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 레닌도 마오쩌둥도 간디도 감히 상상치 못했던 수준으로 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결국 세계화는 금융의 불안, 실업, 그리고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잉태했지만 인류의 다수를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 체제의 성적표다.

세계화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탈세계화(deglobalization)는 그간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가까스로 희망을 찾은 나라들에 다시금 절망을 강요하는 것이고, 세계를 무대로 이윤창출의 자유를 누린 자본들의 활동 공간을 가로막는 것이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탈세계화에 불만을 품은 정치세력과 억눌린 자본이 극단의 방식으로 연대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 인기 있는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복지다. 세계화가 초래한 불안을 ‘나누어 갖는’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각국에서 부자증세가 거론되고, 우리나라에서 재벌개혁이 다시 대선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복지는 자본과 노동이 국경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상호 공존하던 시대에 작동했던 체제유지의 방법론으로서 세계화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하는 세계화 체제에서 과다한 복지로 경쟁력이 약화되는 순간 언제든지 ‘그리스 딜레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 경쟁력이다. 미국이 어려운 고비 때마다 우수한 개인들의 역량으로 새로운 기술혁신을 이뤄내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열어가듯이, 가급적 다수의 한국인을 뛰어난 글로벌 인재로 키워내는 것이 세계화가 초래한 불안한 번영의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승부수다.



이찬근 성균관대와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졸업 뒤 인천대 교수로 있다. 위환위기 이후 금융 대중화를 목표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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