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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인류 생존을 위해 ‘초인류’를 제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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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배낭을 꾸려도, 안 꾸려도 좋습니다. 멀리 떠나든, 집에 머물던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격 여름휴가 시즌,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 달의 책’ 8월 주제는 ‘소설이 있는 휴가’입니다. 색깔과 무게가 각기 다른 신간 소설 세 권을 골랐습니다. 세상에 대한 눈을 키우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 도움이 작품들입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황금가지
688쪽, 1만5000원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테크노스릴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과 밀리터리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를 한곳서 본 느낌이랄까. 일본의 여느 추리소설보다 주제의식이나 스케일이 다른 ‘작품’이다.

 작가는 사형제도를 다룬 『13계단』과 단편집 『그레이브 디거』 등으로 국내에서도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실력파. 이번에는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초인류’를 소재로 인간의 이기심과 야만성을 적실하게 그려냈다.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에서 돌연변이로 고등생물이 태어난다. 생후 3년도 채 안 돼 2주 만에 영어를 마스터하고, 미국 최고 기밀을 다루는 RSA 암호를 해독할 정도다. 1970년대 미국 슈나이더 연구소에서 낸 하이즈만 리포트에서 “두 종의 생태적 지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생식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또 그들이 본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하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위험한 ‘하등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려 할 것”이라고 예견됐던 종이다. (물론 이 리포트는 허구다.)

 이를 알게 된 번즈 미국 대통령은 인류 생존을 위해 초인류 ‘아키리’와 그 부족을 제거하기로 하고 4인의 용병을 투입한다. 한데 그 리더 조너선 예거가 일본의 바이러스 학자 고가 세이지와 연결된다. 예거의 아들이 폐포 상피 세포경화증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고가 세이지가 그 치료약을 개발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가 불의의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약학 대학원생인 아들 고가 겐토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가 겐토는 국익을 앞세운 미 정부의 추적을 따돌리며 점차 비밀에 접근하는데, 이 부분에선 약학·의학·유전학 등 과학지식이 현란하게 등장한다.

 이 부분이 크라이튼의 냄새를 풍긴다면 현장에서 자신들마저 제거대상이었음을 알게 된 예거 일행이 아키리를 데리고 일본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게릴라들과 교전을 벌이고, 미지의 적에게 하이재킹 당한 전투기에 의해 부통령이 암살당하는 장면 등은 톰 클랜시를 떠올리게 한다.

 흔히 ‘집단학살’로 옮겨지는 제목은 원래 민족·인종·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뜻하며 여기서는 ‘초인류’ 말살을 뜻하는데 난징 대학살,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등을 언급하며 인류의 잔혹성이 소설의 주제임을 가리킨다.

 또 하나 우리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는 이례적일 정도로 짙은 친한 감정. 이타적인 한국인 유학생 이정훈이 고가 겐토의 유능한 조력자로 등장하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을 소개하는 바람에 일본독자들로부터 ‘편향적 역사의식’ ‘쓸데없는 흐름’이란 비판까지 들었다.

 사족. 평일에 읽지 말 것. 제법 두꺼운 분량인데도 한 번 손에 들면 놓기 어려워 다음날 지장을 줄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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