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환자 시신유기' 강남 유명병원 CCTV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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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31일 오전 3시쯤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가 숨진 환자 이모씨를 휠체어에 태운 채 병원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사진 서초경찰서]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강 잠원지구 수영장 주차장. 지모(40)씨는 삐뚤어지게 주차돼 다른 차량이 들어갈 자리를 막고 있는 외제차를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수영을 마치고 오다가 앞 유리를 통해 차량 내부를 힐끗 본 지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짧은 청바지와 흰색 상의를 입은 30대 여성이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은 뜨거운 날씨 탓에 부패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지씨는 오후 6시 119를 통해 경찰에 살인사건 발생 신고를 했다. 신고 3시간여 만에 변호사를 대동하고 자수한 범인은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일 시체유기 등 혐의로 전문의 김모(45)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 중이며 곧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이모(30·여)씨에게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을 투여했다. 그러나 이씨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 김씨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살리려고 애를 썼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숨진 사실을 확인한 김씨는 다음 날 오전 3시 보안직원에게 음료수를 주고는 본인의 차량을 병원 정문 앞에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이씨의 시신을 휠체어에 싣고 나와 자신의 차로 옮겨 실었다. 이 직원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수상쩍었지만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김씨는 2시간 후에 “급한 환자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전 6시 진료를 마친 김씨는 병원 지하주차장에서 시신을 이씨의 흰색 아우디 차량에 옮겨 실은 뒤 이를 한강 잠원지구 주차장에 버리고 도주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지하주차장에서 시신을 바닥에 끌어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이 처음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이씨의 하의 속옷은 흙이 묻은 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발목의 조그만 상처 외에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이씨가 2년 전 나한테서 ‘이쁜이 수술’을 받은 뒤 병원 간호사들과 저녁을 같이 먹을 정도로 알고 지냈다”며 “피곤하다고 해서 약물을 5㎎가량 투여했는데 2시간쯤 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 누를 끼칠 것 같아서 시체를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김씨가 투여한 미다졸람은 내시경 검사 전에 수면을 유도할 목적으로 사용되며 정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보통 5㎎씩을 투여한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가 약물을 이씨에게 투여할 때 주변에 간호사 등 다른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유부남이고 이씨는 미혼이다. 유족에 따르면 이씨는 평소 우울증으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고 병원에서 미다졸람과 같은 약물을 영양제 주사로 알고 종종 맞았다. 서초경찰서 안상길 강력계장은 “성추행이나 고의 살인 가능성이 있는지 추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일하는 병원은 1985년 문을 열었다. 신생아를 보호하는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며 전문의 12명이 출산뿐 아니라 ‘이쁜이 수술’로 불리는 여성 성기능 개선 수술도 한다. 김씨는 이곳에서 병원장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 명문대 의대 산부인과를 거쳐 개인병원 과장과 원장을 거쳤다. 병원 경비원 김모씨는 “지난달 31일 경찰이 병원을 수색하고 갔다”며 “사건 당일은 김씨가 근무일이 아님에도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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