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오터-카스텔로 크로스오버 앨범 합작

중앙일보

입력

1996년 1월 스톡홀름. 스웨덴 방송교향악단과 R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를 연주한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무대 뒤에서 콧수염에다 검정 뿔테 안경과 모자를 쓴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 역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싱어 송라이터 엘비스 코스텔로였다.

2000년 10월 스톡홀름 애틀란티스 그라모폰 스튜디오. 'For the Stars' 라는 제목의 앨범(http://www.forthestars.com)을 위해 두 사람은 함께 코스텔로.아바.비틀스.비치 보이스 등의 노래들을 차례로 녹음했다.

코스텔로의 89년 앨범 '스파이크' 에 담긴 '베이비 플레이스 어라운드' 를 비롯, 비치보이스의 '페트 사운드' 중 'Don' t Talk' 'You Still Believe in Me' , 82년에 발표된 그룹 아바의 마지막 앨범 'The Visitors' 중 '내 방을 통해 지나간 천사처럼' , 비틀스의 'For No One' ….

성악가가 부른 크로스오버 하면 으레 팝뮤직을 떠올리지만 이 앨범을 들어보면 실내악과 팝.클래식.포크가 한 몸을 이뤄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어색하고 억지스런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85년부터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 전속 아티스트로 활약 중인 폰 오터가 시도한 코스텔로와의 만남에 상업적 동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즘 음반업계의 사정으로 보면 관현악 반주의 독집 앨범을 내고 제작비를 건지려면 적어도 5만장은 팔려야 한다.

DG는 올해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CD 59장에 담으려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의 계획을 대폭 축소해 12장 분량만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 40년간 필립스 레이블의 전속 아티스트로 활약했던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도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전속 아티스트로의 '생명' 을 유지하려면 가끔은 베스트셀러 앨범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폰 오터는 이번 앨범을 단지 그렇고 그런 크로스오버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대부분이 팝뮤직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들이고 실내악적 분위기의 잔잔한 편곡으로 예술가곡 못지 않는 밀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과 첼로.오르간.피아노.어쿠스틱 기타.비브라폰 등을 최대한 절제해 사용한 편곡이다. (아바의 멤버였던 베니 앤더슨도 아코디언 연주를 맡았다. )

최근 클래식과의 교류를 넓혀가고 있는 코스텔로의 개성적인 음악세계도 이 앨범에 담긴 독특한 색깔에 큰 몫을 해낸다. 그는 브로드스키 4중주단과 가수 우테 렘퍼가 연주한 앨범 '줄리엣의 편지' 를 냈다.

96년 폰 오터와의 첫 만남 이후 브로드스키 4중주단과 메조소프라노를 위한 노래 모음집 '3명의 미친 여인' 을 작곡했고 이를 폰 오터가 연주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음반을 녹음해 보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고 3년간의 준비 끝에 30곡을 골랐다. 이번 앨범에 담긴 곡은 그중 18곡에 지나지 않는다.

팝뮤직이긴 하지만 평소에 흔히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어서 새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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