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런던] 마지막 한 발, 위대한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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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양궁 대표팀 기보배가 30일 오전(한국시간)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기보배는 마지막 한 발을 9점에 쏘아 여자양궁 단체전 7연패를 완성했다. [런던=김경빈 기자]

라스트 샷(The last shot)은 운명을 가르는 한 방이다. 과녁을 쏘는 사격·양궁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런던 올림픽 여자양궁 대표팀 막내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30일(한국시간) 천금의 라스트 샷을 날려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기보배는 “마지막 한 발은 (손이 아니라) 강심장으로 쐈다”고 했다.

 진종오(33·KT)도 그랬다. 28일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후반부에 부진하다가 라스트 샷을 10.8점으로 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요한 대회마다 막판 흔들렸던 그는 이번엔 마지막 한 발로 기사회생했다.

 박빙의 야구경기에서 마무리 투수처럼, 축구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처럼 라스트 샷을 쏘는 선수는 극한의 부담감과 싸운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사격이 세계 정상에 가까워진 것도 정교한 기술 위에 탄탄한 심리를 결합하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쏘는 침착한 라스트 샷.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의 최고 브랜드다.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이 열린 30일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오후 들어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와 바람은 선수들의 활을, 그리고 마음을 흔들었다. 한국과 중국은 3엔드까지 접전을 벌였다.

 폭우가 잦아들고 4엔드에서 진짜 승부가 시작됐다. 중국은 3연속 9점을 쏴 209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성진(27·전북도청)이 9점을 쐈고, 이날 최고의 감각을 보였던 최현주(28·창원시청)가 8점에 그쳤다.

201점. 마지막 한 발이 9점이면 금메달, 8점이면 슛오프(연장전), 7점이면 금메달을 내주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가장 어리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많고, 강인한 성격을 가진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마지막 궁사였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탄탄한 셋업 동작에서 활을 당겨 자신 있게 쐈다. 화살은 9점 동심원 가장자리에 꽂혔다. 210-209. 여자 양궁은 올림픽 7연패 위업을 이뤘다. 기보배는 “마지막 화살을 쏠 수 있었던 건 심리 전문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덕분이다. 올림픽 6연패 뒤 대표로 나서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지 몰랐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라는 한국 여자양궁, 그중에서도 담력이 가장 세다는 기보배도 떨었다.

 지난 28일 남자 10m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진종오(33·KT)도 떨었다. 결선에서 처음 다섯 발을 잘 쏜 그는 여섯 발째부터 4연속 9점대에 그치면서 루카 테스코니(이탈리아)에게 1.3점 차로 쫓겼다. 마지막 발 9점대를 쏜다면 금·은 메달이 바뀔 수 있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50m 결선에서 마지막 발이 8.2점에 그쳐 금메달을 빼앗길 뻔했다. 추격했던 탄종량(중국)도 압박감 탓에 9.2점밖에 쏘지 못해 진종오가 겨우 금메달을 지켰다. 사격 대표팀에서도 배짱이 가장 좋다는 그이지만 마지막 순간엔 손이 얼어붙는다.

 진종오는 ‘라스트 샷’에서 결선 최고점인 10.8을 쏘고 우승했다. 그는 “한 발 때문에 몇 년을 아쉬워한 적이 많았다. 심리 훈련을 통해 강해졌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라스트 샷 주인공으로 매튜 에먼스(31·미국)가 꼽힌다. 그는 2004 아테네올림픽 50m 소총 3자세 결선에서 선두를 달리다 ‘라스트 샷’을 옆 선수 표적에 쏴 꼴찌로 추락했다. 에먼스는 이때의 트라우마를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선에서도 여유 있게 1위를 달리다가 ‘라스트 샷’으로 4.4점을 쐈다. 어이없는 한 발로 에먼스는 4위로 추락했다.

런던=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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