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인권 문제에 발목 잡힌 한·중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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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정치국제부문 차장

김영환(49)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한·중 외교 갈등의 불쏘시개가 됐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던 그는 3월 29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정보기관에 체포돼 7월 20일 귀국하기까지 114일간 구금됐었다. 그의 석방 문제는 멍젠주(孟建柱) 중국 공안부장(장관)의 12~14일 방한을 계기로 극적으로 풀렸지만 그가 귀국한 지 닷새 만에 반전을 맞았다. 그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하면서다.

 1차적 원인은 중국이 제공했다. 중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도 않은 이웃나라 국민에게 최고 무기징역이 가능한 국가안전위해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씌웠다. 김씨를 구금한 지 약 한 달 만인 4월 28일에야 우리 영사의 첫 면담을 허용했다.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새삼 확인시킨 셈이다.

 김씨의 지인에 따르면 중국 요원들은 4월 초 김씨에게 전기봉을 몇 차례 들이대며 고문했다고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1988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중국은 자국민에게 해서도 안 될 만행을 이웃 나라 국민에게 버젓이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 측은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잦은 중국의 열악한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자국 수감자를 거칠게 다루듯 김씨에게도 ‘내국인 대우’를 해 줬을 뿐이라고 중국 측은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 외교 당국이 김씨에 대한 고문 사실을 포착하고도 석방 협상에 악영향을 줄까 봐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외교통상부는 가혹행위를 문제 삼아 중국을 압박할 경우 자칫 김씨의 석방이 더 늦어질 위험이 있다고 봤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안 김씨의 구금생활은 계속 이어졌고, 그는 매일 힘겨운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만일 중국이 아니라 다른 ‘만만한’ 나라가 우리 국민을 그처럼 다뤘다면 우리 외교부는 어떻게 나왔을까. 당사자가 구금 상태에 있더라도 공개항의를 비롯해 대대적인 외교공세를 펴지 않았을까.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외교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다음 달 24일이면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주년이 된다. 잔치를 벌여야 할 시점에 양국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문제로 어색한 사이가 돼 가고 있다. 아무래도 수교 기념일엔 두 나라 모두 축하에 앞서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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