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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메이커 광장 ④ 수영도 스타팅 블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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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류윤지
전 수영 국가대표

스타팅 블록(사진)의 도입. 런던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생긴 가장 큰 변화다. 육상 경기에서 쓰이던 발판이 수영장의 스타트대에도 등장한 것이다. 이 스타팅 블록에 수영선수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스타트는 얼핏 생각하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박태환 선수의 주 종목인 400m를 보자. 국제수영연맹(FINA)의 규정에 따라 잠영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최대 15m다. 레인 끝에서 턴한 후 다시 잠영으로 15m를 간다고 해도 순전히 수영으로만 가야 하는 거리가 280m다. 누가 봐도 스타트 거리는 비중이 작다.

 그런데 왜 “스타트의 차이가 레이스를 결정한다”고 하는 걸까. 승부는 0.01초 차이로 갈리기 때문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접영 100m 경기에서 마이클 펠프스는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수영선수들의 평균 출발반응 속도는 0.7초대. 빠른 선수들은 0.6초대다. 출발반응 속도란 심판의 출발 신호가 울린 뒤 선수가 스타팅 블록에서 발을 떼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스타트가 빠르면 남들보다 0.1초는 앞서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타트가 기록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더 커졌다. 가장 큰 이유는 ‘원스타트제’의 도입이다. 두 번의 기회를 주던 이전과는 달리 2000 시드니 올림픽부터 스타트 기회를 한 번으로 줄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부정 출발을 해 다른 선수들의 출발반응 속도를 늦추거나, 출발 신호를 듣기 전에 머릿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출발해 버리는 편법을 없애기 위해서다. 0.1초 미만의 출발반응 속도가 나오면 부정 출발로 실격되는 제도도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번에 빠르고 힘차게 뛸 수 있을까’는 수영선수들의 고민이 됐다. 여기서 등장한 게 ‘크라우칭 스타트’다. 육상선수처럼 한 발을 뒤로 뺐다가 발판을 차면서 출발하는 방식이다. 두 발을 스타트대에 걸고 출발했던 그랩 스타트와 달리 안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박태환 선수는 그랩 스타트로 실격을 당했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심리상태가 불안할수록 자세도 불안정해지는 게 그랩 스타트다. 그 뒤 박태환은 전략을 바꿨다. 지금은 크라우칭 스타트를 통해 안정적인 동작을 구사한다. 2006년까지는 출발반응 속도가 0.7초대였지만 크라우칭 스타트가 몸에 익으면서 0.6초대로 줄었다.

 스타팅 블록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크라우칭 스타트에 스타팅 블록을 사용하면 육상 경기처럼 더 빠르고 힘찬 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발판에서 뛸 경우 수영장 바닥에서 뛸 때보다 최대 0.06초까지 출발반응 속도를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2년간 수영의 세계신기록은 빈곤했다. 2010년에 FINA가 ‘기술 도핑’으로 불리는 전신수영복 착용을 금지하면서부터다. 스타팅 블록의 도입은 전신수영복 착용 시절 세워진 세계기록을 깨기 위해 훈련해 온 선수들에게 희소식이다. 스타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스타팅 블록이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류윤지 전 수영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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