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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실종됐대" 끔찍한 '제주도 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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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렇게 넘어뜨리고 … 26일 제주도 올레 제1코스 인근에서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피의자 강모씨가 피해자를 쫓아가 넘어 뜨리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진짜 제주도 왜 이래. 서귀포 일호광장이랑 동문로터리에서 여성 인신매매 발생했대.”(아이디 효선***)

 26일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급속히 퍼진 제주 관련 괴담이다. “조선족들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납치했다”는 내용도 보태졌다. 이러한 괴담들은 인터넷 포털을 통해,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정부에서 여성을 납치한 조선족들을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다”는 글도 더해졌다.

 ‘제주 올레길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 이후 제주도가 흉흉한 괴담과 루머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괴담은 여성 납치와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근 일주일간 서귀포시 일호광장과 동문로터리에서 여자 2명이 실종됐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 9명이 인신매매를 위해 납치했다”는 괴담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나도 조선족 남성 여러 명이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 “제주도에 혼자 가지 마세요. 큰일 납니다” 등의 글까지 더해지면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괴담이 퍼지면서 평소 저녁이면 많은 사람이 찾던 일호광장과 동문로터리 등에는 여성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제주 올레길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 이후 SNS에서는 ‘제주 여성 납치’ 등의 괴담이 퍼지고 있다.

 제주에선 올레길 살인사건과 괴담 등이 맞물리면서 단순한 가출이 실종사건으로 확대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일 “서귀포의 한 다방에서 일하던 B(40·여)씨가 18일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확인에 나섰지만 B씨의 휴대전화가 18일 오후부터 꺼져 있는 데다 사용내용도 없어 수사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수사 인력을 동원해 서귀포 시내 여관과 가게 등에 대한 대대적인 탐문수사를 벌였다.

 사건은 허무하게 해결됐다. B씨가 25일 인터넷을 통해 퍼진 수사 소식을 접하고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실종이 아니고 단순 가출임을 알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살해사건에다 괴담이 겹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져 단순 가출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감을 자극하는 괴담이 퍼져 나가자 경찰이 적극 대응에 나섰다. 제주 경찰은 이날 “트위터와 인터넷 등을 통해 여성 납치 괴담이 퍼지고 있지만 그런 범죄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발표했다. 또 괴담 유포자를 적극적으로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주민과 네티즌들 사이에선 무책임한 괴담 유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성현지(23·여)씨는 “살인사건으로 가뜩이나 불안한데 끔찍한 소문까지 나돌아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며 “제주도에 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살해사건 이후 제주를 중심으로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글들이 쏟아지면서 민족· 인종 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레길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피의자 강모(46·구속)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집중 추궁했다. 경찰은 이날 강씨가 “A씨를 뒤따라가 범행했다”고 진술을 번복함에 따라 계획적인 살인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강씨는 그동안 “소변을 보고 있는 나를 성추행범으로 오해한 A씨가 경찰에 신고하려는 것을 막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해 왔다.

제주=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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