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우리금융 매각 … KB, 마감 이틀 앞두고 입찰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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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어윤대
KB금융 회장

KB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불참하기로 25일 결정했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 본점에서 열린 긴급 이사진 간담회에서다. 이 간담회에는 어윤대 KB금융 회장과 이경재 이사회 의장, 민병덕 국민은행장 등 10명의 임원·이사진이 참석했다.

 결론이 나기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은 전한다. 일찌감치 ‘손을 떼자’는 데 이사진의 의견이 모였다는 것이다. 최근 본지 인터뷰 등을 통해 “조건이 좋다면 인수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어 회장 역시 이날은 인수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의 입장이 갑자기 바뀐 데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발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박 후보는 최근 “우리금융 민영화는 다음 정권에서 논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 초부터 “올해 안에 반드시 우리금융을 매각하겠다”고 거듭 밝혀 왔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논의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청와대도 (우리금융 민영화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분위기도 전달됐다”고 전했다.

 최근 총파업을 선언한 금융노조가 우리금융 민영화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부담이다. KB금융지주의 한 사외이사는 “사회 분위기나 노조의 반발을 감안했을 때 두 금융지주를 합쳐도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구조조정 없이 두 조직을 합친다면 효율성이 심각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여기는 이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KB금융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이 정권에서 우리금융 민영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이 정부는 2010년과 지난해 두 차례 우리금융 매각을 시도했다. 2010년 1차 매각은 우리금융 독자민영화 컨소시엄이 예비입찰에 불참해 불발됐고, 2011년에는 MBK파트너스만 입찰에 참가해 유효경쟁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우리금융 3차 매각 예비입찰제안서 마감일은 27일. 업계에선 KB금융 외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교보생명과 컨소시엄 구성을 시도한 IMM 등이 입찰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의 반대로 교보생명도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동양증권 성병수 연구원은 “KB금융이 들어와도 유효경쟁(복수입찰)이 될 수 있을지 불투명했는데 KB금융이 불참하면 사실상 무산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 자금을 12조원 넘게 투입한 우리금융이 10년 넘게 민영화에 실패하자 시장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금융당국이 ‘정권 내 민영화’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생긴 해프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KB금융과 우리금융이 합병하면 600조원이 넘는 메가뱅크가 탄생한다”며 “이런 거대 은행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감당할 시스템이 국내에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산업 재편이란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우리금융 민영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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