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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932명에게 카드 발급 … 119억원 ‘유령 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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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작 문을 닫았어야 할 부실 저축은행이 멀쩡하게 영업할 수 있었던 데엔 감독당국의 ‘부실 감독’이 일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솔로몬저축은행이 사모투자펀드(PEF)를 활용, 솔로몬투자증권을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 때 부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감안하면 영업정지돼야 했지만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따져 ‘정상’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3일 “‘동일계열 기업 주식취득 제한규정’ 위반 여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인수 승인을 내줬다”며 금융감독원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 또 “저축은행이 PEF에 출자하는 방법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금감원에 통보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금융당국의 업무태만은 무더기로 적발됐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나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담합 의혹은 물론 보험·카드·증권사 등 금융시장 전반의 문제점 뒤에는 부실 감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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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사람 명의 카드 … 대부분 차명 추정=최근 카드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급자의 신용도나 소득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 카드 발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게 ‘부실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인당 평균 카드 이용한도는 월평균 가처분가구 소득의 416.1%에 달했다. 월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카드로 416만원을 긁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버는 돈보다 대출이자 갚는 데 돈이 더 들어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100% 초과자’에게도 과도한 이용한도를 부여했다.

 심지어 이미 사망한 사람 명의로도 신규 발급이나 갱신이 이뤄졌다. 카드사는 2000년부터 2011년 6월까지 사망일이 지난 1932명에게 카드를 신규발급·갱신해 줬으며, 이 가운데 1391명에게는 2008년 이후 총 119억원의 카드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대부분 차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부실 위험이 큰 카드사들의 대출성 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10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카드로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을 이용한 저신용자는 각각 91만4000명, 61만6000명이었고 대출액은 8조6000억원에 달했다.

 ◆저축은행, LTV 초과해도 대출=저축은행에서는 대출한도를 초과해도 무사 통과였다. 예컨대 투기지역인 강남 3구는 담보인정비율(LTV·담보가치 대비 대출금 비율)이 50%인데도, 이를 초과해 70~80%까지 대출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저축은행이 LTV 한도 규제를 위반하면서 해준 대출은 지난해에만 최소 1968건, 1747억원이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이 2008년 12월 11일 이후 취급한 대출에 대해서는 LTV 규제 준수 여부나 적정성을 점검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객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신용평가사들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신평사들은 원리금이 5영업일만 늦게 들어와도 연체로 잡아 은행에 통보한다. 감사원 분석 결과 이들 단기연체자는 대부분 한 달 안에 돈을 갚았다. 하지만 은행들은 5영업일 이상 단기연체 정보를 신용등급 평가에 고스란히 반영했고, 결국 이들에 적용되는 대출금리는 높아졌다. 카드대금 41만5000원을 불과 일주일 늦게 갚은 A씨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때 대출금리가 2%포인트나 올라 이자를 연 160만원이나 더 내기도 했다. 7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자 3649명 가운데 777명이 이런 식으로 대출금리를 0.1~3.2%포인트 더 물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딸·아들 뒤바꿔 보험 가입=보험사들의 태아보험도 소비자를 기만한 사례로 꼽혔다. 태아보험(어린이보험의 태아가입 특약)의 경우 여아가 남아보다 보험료가 싸다. 하지만 보험사는 보험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남아로 일괄 적용해 보험료를 거둔 뒤 차액을 돌려주지 않았다. 태아보험은 출생 전에는 성별을 확인할 수 없어 남아로 일괄 적용한다. 하지만 나중에 여아가 출생할 경우 그 차액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를 고객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태아보험 가입자 가운데 12만6000명이 남아 기준 보험료를 냈으며, 차액으로 인한 보험사들의 초과 수입은 60억원이 넘었다.

 단체 실손의료보험의 중복 가입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보험사들이 고객의 중복 가입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는지 감독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 탓에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단체와 개별 실손의보를 중복 청구한 사람은 10만8038명이나 됐다. 또 지난해 보험금을 청구한 전체 실손의보 중복 가입자 18만2073명 중 20.9%인 3만8141명에 대해 중복 보상이 이뤄졌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금융사가 소비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게 된 책임을 금융감독 당국이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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