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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봉이냐" 카드수수료 차별에 뿔난 상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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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인터넷으로 남성용 티셔츠를 파는 박모(33)씨는 요즘 카드 수수료 얘기만 나오면 분통을 터뜨린다. 그가 올리는 한 달 매출은 300만원 안팎. 옷 도매 대금에 사무실 임대료, 택배비를 내고 나면 100만원을 손에 쥘까 말까다. 그야말로 ‘영세 사업자’지만 그는 전자결제대행회사에 매출의 3.5%를 신용카드 수수료로 낸다. 카드 결제 매출 300만원 중 10만원 남짓이 비용으로 나가는 셈이다. 그는 “오프라인 영세 가맹점은 지금도 카드 수수료가 1.8%에 불과하고 이마저 1.5%로 내린다는데 인터넷 상인들은 왜 나아지는 게 없냐”며 “카드 결제가 훨씬 많은 인터넷 상인들이 카드회사의 봉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9월부터 시행되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개편안에서 인터넷 상인들이 소외되고 있다. 개편안은 연매출 2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에 우대 수수료율(1.5%)을 적용한다는 게 골자. 하지만 인터넷 상인들은 대부분 가맹점 등록을 따로 하지 않고 전자결제대행회사(PG·Payment Gateway)나 오픈마켓을 이용하기 때문에 개편안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 상인들이 내는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매출의 3.3~4.0% 정도. 영세 가맹점주가 내고 있는 카드 수수료(1.8%)나 전체 평균 수수료(2.1%)와 비교하면 2%포인트 이상 높다. 9월부터 영세 가맹점이 추가로 수수료 0.3%포인트 인하 혜택을 보는 걸 감안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문제의 출발은 인터넷 상인들이 개별적으로 가맹점 등록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 얼굴도, 카드 실물도 보지 않고 결제해야 하는 온라인 거래의 특성상 상인들이나 카드사나 서로 믿기 어렵다. 그 때문에 이니시스·LG유플러스·KCP 같은 결제대행회사들이 중간에서 카드 결제를 대행한다. 일종의 보증보험사 역할이다. 결제대행회사들이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는 보통 2.9~3.3% 수준. 여기에 초기 등록비와 연간 회원료, 건당 수수료를 얹어 상인들에게는 3%대 중후반의 수수료를 청구한다.

 영세 상인들의 장터 개념인 오픈마켓도 같은 구조다. 이곳은 품목별로 매출의 5~12%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카드 결제를 대행해준 수수료에다 마케팅·광고 비용을 얹은 개념이다. 한 오픈마켓 홍보 담당자는 “우리가 받는 수수료의 상당 부분이 카드 결제 비용”이라며 “이번 개편안에서 우리 회사가 받는 혜택이 없으니 우리도 회원 상인들에게 혜택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영세 인터넷 상인들이 개별적으로 가맹점 등록을 한다면 수수료 혜택을 줄 수 있겠지만, 결제대행회사를 통해 일괄적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건건이 수수료를 확인해 낮춰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김영기 상호여전감독국장은 “인터넷 신용카드 결제는 사고율이 높아 카드사나 결제대행회사에 무조건 ‘수수료를 낮추라’고 하기 어렵다”며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제 과정을 세심히 설계해 영세 인터넷 상인까지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터넷 거래가 크게 늘고 있고 인터넷 거래에선 신용카드 결제가 더 보편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인터넷 상인에 대한 수수료 차별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할 수 있다”며 “PG를 통한 결제도 개별 인터넷 상점 규모에 따라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결제대행회사(PG·Payment Gateway)

인터넷상에서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자동응답시스템(ARS), 계좌이체 등을 통한 결제를 대행해주는 업체. 중소 인터넷 상점은 보통 신용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워 PG에 결제를 맡긴다. PG는 신용카드사에 결제 금액의 3% 안팎의 수수료를 내고, 여기에 0.4~1%의 대행 수수료를 얹어 인터넷 상점에 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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