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는 이 없기, 우리끼리만 재미있기 없기
-신동엽의 ‘19금 개그’가 여전히 화제다.
“아주 옛날부터 성적(性的) 코드를 자연스럽게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인들이 만나면 자연스럽게 꺼내는 게 바로 이 얘기 아닌가. ‘남자 셋 여자 셋’이 끝난 후에도 일일 시트콤 말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심야에 성인 시트콤을 해보자고 했다. 그게 벌써 15년도 더 된 얘기다. 이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우리 사회가 점점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19禁 개그의 지존, 신동엽
-그동안 꾸준히 해와서 그런지 독보적이라는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서 하는 건데…. 나만 입 밖으로 꺼내는 걸까. 접근 방식이나 관점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인터넷엔 ‘신동엽 섹드립 플레이어’라는 동영상이 있다. 그의 ‘19금 개그’를 팬들이 모아놓은 영상이다. 10여 년 전 방송까지 담긴 이 동영상엔 그의
민망할까봐 웬만하면 꺼내지 않고, 자칫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그가 하면 웃어넘길 수 있는 건 그의 캐릭터 덕이기도 하다. 능청스럽고 깐죽대는 평소 캐릭터가 ‘19금’조차 개구쟁이의 짓궂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넘을 듯 말 듯 절묘한 그의 수위 조절이다.
-찰랑찰랑 잘 조절하는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한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어느 선을 넘으면 안 되고, 그럼에도 그 선까지 최대한 가까이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선을 넘을 바엔 안 하는 게 낫고, 너무 안전하게 갈 바에도 안 하는 게 낫다. 그 선에는 나만의 기준을 적용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코미디뿐 아니라 삶 자체가 그 선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거 아닐까.”
-나만의 기준이란 게 뭔가.
“웃음이란 게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거나 상대를 놀리고 당황스럽게 할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을 비하할 때도 있고. 이렇게 누군가 웃음의 대상이 될 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선을 넘는 순간 인격적으로 모욕당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웃음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그는 이런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착한 사람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소외받는 사람을 자꾸 쳐다보고 신경 쓰게 된다”고 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형의 영향이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말 못하는 우리 큰형 때문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도 혹시나 우리끼리만 오래 대화한 게 아닌가 신경을 썼다.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방송에서 그가 몇 차례 얘기했던 큰형은 청각장애가 있다. “가족 모두 음악 프로그램은 형이 못 들어서 안 보고, 개그 프로그램은 우리끼리 웃게 되기 때문에 안 봤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재미있는 개그는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원 오브 뎀’도 OK
-최근까지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그 기간이 신동엽에게는 슬럼프였고.
“야생에서 소리 지르고 게임하는 건 잘 못한다. 목도 금방 쉬고 체력이 뒷받침이 안 된다. 재능이 없는 거지.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 보면서 대단하다, 대단하다 감탄한다.”
-방송가에선 지붕 덮인 곳에서 방송하면 실속파라고 하던데. 누군가 농담이라면서 신동엽은 게을러서 야외 방송 안 한다더라.
“아냐 아냐, 그건 농담이다(그가 처음 웃었다). 각자 가진 재능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성대가 약하고 체력이 저질이다. 대신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고 나만의 색깔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게 다 실내였다(웃음).”
-지금 하는 방송은 후임으로 투입됐거나(‘강심장’), 집단MC가 끌고 가는(‘안녕하세요’) 것들이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누가 하던 프로그램을?’ 이러면서 싫어했을 거다. 지금은 내가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 안 한다. 예전엔 그런 게 심했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뭘 하다가 딱 잘될 때 그만두고 6개월씩 쉬었다.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할 때도 (그냥 관두면) 욕먹을 것 같아서 김제동·유재석씨에게 사정을 했다. 근데 그 친구들이라고 하고 싶었겠나. 그래도 지금 ‘해피투게더’는 유재석이 열심히 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심장’을 하니까 강호동 프로그램을 물려받았다고들 하는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스타일이 있다. 잘될 수도 있고 안 되면 그만둘 수도 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 내 의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유치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하는 것. 예전엔 회의해서 가대본 나올 때까지 소파에서 자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확인하고 그렇게 전쟁처럼 살았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게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결과물에 대해 조바심 내기보단 힘 빼고 즐겁게 일하는 게 중요하더라. 지금은 그런 강박에선 벗어났다.”
-‘제 2 전성기’라는데 제의가 많지 않나.
“제의는 많이 온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몫이다. 좋은 PD와 작가가 제의를 해줬을 때 내 느낌을 곁들여서 만드는 거다. 제 2의 전성기라고 하는데, 거기엔 공감하지 않는다. 대중이 좋아해주면 좋고, 아니면 또 자극받아서 하면 될 뿐이다. 대중이 ‘19금 개그’에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해온 것들이니까. 내가 그것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재미있어 하니까 나쁘지 않다.”
-완벽한 ‘19금쇼’란 어떤 것일까.
“음, 이런 거 아닐까. 보일락 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