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선배 넘어서다니 … 어휴, 난 한참 멀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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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에 오른 서희가 ‘지젤’ 서울 무대에 서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희가 출연하는 날은 19·21·22일이다. [서계호 인턴기자]

“강수진 선배를 넘어섰다고요. 어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어디 감히….”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American Ballet Theater) 수석무용수 서희(26)가 한국을 찾았다. 18일부터 닷새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ABT의 ‘지젤’에 출연한다. ABT는 영국 로열 발레단,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세계 5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6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 메이저 발레단 수석무용수에 등극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44)과 비교되곤 한다. 강수진 얘기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흔들며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강 선배는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발레리나”라고 말했다. <본지 9일자 2면 보도>

 -수석에 오르고 첫 한국 방문이다. 소감은.

 “타이틀만 달라졌지 난 똑같다. 오전 10시에 연습을 시작해 저녁 7시까지 반복하는 일상뿐이다. 달라진 건 하나, 더 좋은 모습으로 엄마·아빠를 뵐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솔리스트가 된 지 2년 만에 수석이 됐다. 초고속 승진인 셈인데.

 “군무였다가 2010년 솔리스트가 됐다. 전혀 딴 세계였다. ‘라바야데르’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등 내가 꿈에 그리던 작품의 주인공을 하게 됐고, 무대를 통해 하나씩 더 배워가는 기쁨을 맛봤다. 2주 전 수석에 오르고 곧바로 아시아 투어에 올라 지금은 얼떨떨하다. 투어 다 끝나면 그땐 정말 실감할지 모르겠다.”

 -ABT 수석무용수 중 유일한 동양인이다.

 “동양 사람들만의 섬세함이 예술에서는 강점이 되는 것 같다. 특히 한국 무용수들은 특유의 근성이 있다.” (※함께 방한한 케빈 매켄지 ABT 예술감독은 서희에 대해 “놀랄 만큼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 신체 조건도 좋지만 고전발레의 감성을 잘 표현한다. 이번에 공연하는 ‘지젤’도 서희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한국인을 뛰어넘어 세계인에게 통하는 발레리나”라고 평가했다.)

 -2년 전에 부상도 당했는데

 “‘호두까기 인형’을 연습하다 인대가 끊어져 5개월간 재활했다. 난 긍정적이다. 재활할 때 ‘내가 모르는 세상이 또 있구나, 부상을 당하면 이렇게 극복하면 되는구나’ 싶어 힘들어했기보다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돌이켜보면 2005년 입단해 군무 시절, ‘뒤편에 병풍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겠는데…’라며 무대를 갈망하고, 막막한 미래에 불안해 하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일각에선 ‘강수진을 넘어섰다’는 말도 있다.

 “나도 강수진 선배의 춤을 보며 꿈을 키워왔다. 선배는 정말 다르다. 가까이에서 본 선배의 손동작, 눈동작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초보는 큰 그림만 보지만, 대가는 작은 디테일로 승부 건다는 걸 그때 느꼈다. 단지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해 관객을 마음을 흔든다는 점에서 강수진 선배는 진정한 예술가다. 난 한참 멀었다.”

 -‘지젤’ 공연의 최고가가 무려 40만원이다.

 “나도 티켓값 얘기 듣고 깜짝 놀랐다. 나 역시 가족을 초청하기에 부담스럽다. 사정이 있겠지만 발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미래의 서희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람이라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하기 싫은 순간에도 잘 하는 게 프로’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런 마음으로 토슈즈를 신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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