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사파티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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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일은 마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는 날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와의 시장 통합에서 굴러올 횡재를(?) 셈하며 멕시코 정부는 축제를 벌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날 새벽 남동부 정글에서 날아든 긴급 뉴스는 이 축제를 장례로 바꾸고 말았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이 네 도시의 지방 정부를 점거하고 "정부 당국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유일한 길, 즉 무장 투쟁으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기로 결심했다" 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치아파스 반란은 - 혁명은 - 이렇게 시작되었다.

*** 장례로 바뀐 나프타 축제

치아파스 주는 자원의 보고다. 보고이기 때문에 한층 혹독한 착취가 뒤따르고, 그래서 더욱더 가난한 역설의 땅이 되었다.

멕시코 수력 발전의 55%가 이 지역의 몫이나 전체 가구의 3분의1에만 전기가 들어오며, 멕시코 커피의 35%가 여기서 나오는데도 해외에서 커피 1㎏이 2달러50센트에 팔리면 오직 80센트만이 현지에 떨어질 뿐이다.

아동 1백명 중 72명은 1학년 교육도 받지 못하며, 관광객 1천명당 호텔 객실은 7개나 되지만 주민 1천명당 병상은 0.3개에 불과하다.

다국적 기업들은 매일 9만2천 배럴의 석유와 5천2백억 입방피트의 천연 가스를 퍼내면서 그 대가로 환경 오염, 농촌 파괴, 알콜 중독, 물가 폭등, 매춘과 빈곤을 남겨놓는다.

죽음을 빼고는 모든 것이 어려운 이런 현실을 두고 이 책 『분노의 그림자』(삼인.1999)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1백52쪽) 하느냐고 처절하게 묻는다.

반란의 주역은 가난과 차별에 찌든 마야족 '원주민' 이다. 스페인어조차 통하지 않는 이들 인디언은 지배층의 눈에 기껏해야 "인류학적 연구 대상, 관광객을 위한 특산품, '쥬라기 공원' 의 구경거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백15쪽).

지역 갈등이나 종교 갈등이 그렇듯, 인종 갈등도 그 원인이 피부 색깔만은 아니다. 17년 멕시코의 혁명 헌법은 사회 정의에 입각해 토지의 사유를 일정하게 제한했는데, 대지주와 외국 자본과 결탁한 살리나스 정부가 91년 이 규정을 폐기했다.

이렇게 '토지와 자유' 라는 민중의 열망이 무참하게 깨진 결과 "과거의 바나나 공화국들이 그랬듯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 혁명' 이 판을 치는 지금도 남동부는 여전히 천연 자원과 육체 노동을 수출하고 있으며, 과거 5백년 동안 그래왔듯 아직도 자본주의의 주요 산물인 고난과 죽음을 수입하는" (63쪽) 절망과 참상이 계속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지식인 가운데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도 있다. 사령관이 만년 공석이니 그는 최고 권력자인 셈이다.

그러나 내막은 전혀 딴판이어서, 그에게 자율과 민주주의를 배운 원주민들이 심심찮게 '대부' 의 의견을 뒤집어버린다.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소르본 출신 마르코스의 총 솜씨는 보지 못했으나 그의 글 솜씨는 정말 놀랄 만하다.

"승리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권력을 잡는 것이었을까요? 아니오. 그보다 훨씬 얻기 힘든 것, 즉 새로운 세상이어서" (1백55쪽),

그들은 정부군의 비행기 폭격을 목총으로 견뎌냈을 터이다.

"여러분은 사파티스타의 총에 달린 하얀 리본을 볼 수 있을 겁니다…저 리본은 여기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역설을,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기를 바라는 무기임을 보여주기에" (3백19쪽), 세계가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이는지 모르겠다.

96년 정부는 사파티스타와 원주민의 권리및 문화에 대한 '산 안드레스 협정' 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 법적 지위를 헌법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계속 연기되자, 마르코스는 4백여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수도 멕시코시티로의 행진을 감행했다.

혁명적 결과는 폭력 혁명으로도 비폭력 혁명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헌신과 참여를 통한 투쟁으로만 가능하다는 믿음의 실천이었다.

그들의 '수호 천사'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1919년 정부의 유인과 배신으로 사살된 불쾌한 기억이 다시 그들을 괴롭혔을지 모르나, 정부군 호위 아래(!) 16일간 3천5백 ㎞의 '대장정' 을 마친 반란군 부두목은 여전히 얼굴은 가린 채, 지난 11일 수도의 헌법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멕시코 국민과 세계 언론이 주시하던 28일의 의회 연설은 막판에 무산됐다.

*** 최초의 포스트모던 혁명

해리 클리버는 그의 저서 『사빠띠스따 : 신자유주의, 치아빠스 봉기,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갈무리.1998)에서 이 "새로운 조직적 형식은 낡은 - 레닌주의적 혹은 사민주의적 - 공식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 즉 혁명 조직 및 투쟁의 탈사회주의적 문제에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어떻게 모색될 수 있는지" (55쪽)에 대한 고무적 사례가 된다고 썼다.

포스트모던 시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게릴라 사파티스타가 벌이는 '도박' 의 의미가 바로 그것일 터이다. 몇몇 외신은 벌써 사파티스타의 정당 변신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또 하나의 남미판 해프닝인가? 그래, 상품이 아니면 모조리 희롱당하는 이 모멸의 시대에 어찌 혁명만 '이벤트' 가 아니기를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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