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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무자산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19%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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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24면

투자에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지속가능투자다. 이 개념의 등장 초기에는 기업이 환경·노동·인권·사회공헌 등 일종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가능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개선되고 주주가치 역시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딜로이트와 함께하는 지속가능경영 ②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의사 결정을 할 때 투자대상을 재무적 관점에서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사회공헌 등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등 30여 개 연기금과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서명하면서 출범한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큰 투자자 네트워크 중 하나로 발전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모두 1036개 기관이 여기에 서명했는데, 이들이 운영하는 자산규모가 무려 30조 달러에 달한다. 골드먼삭스·페미코·KKR 등 유수의 글로벌 투자기관은 물론 국민연금·사학연금·알리안츠자산운용 등 한국의 기관들도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6년부터 사회책임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재무분석에 의존한 기업평가 방법에서 벗어나 기업을 다각도로 평가한 첫 투자사례다. 도입 초기 성공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난 5월 현재 누적 연평균수익률 10.1%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수익률 대비 4.4%포인트 높은 성과를 거뒀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투자 규모는 최초 900억원에서 올해 4조원을 넘으면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지속가능투자의 성과는 연구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리서치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약 3년6개월 동안 지속가능성과 상위등급(AA)을 기록한 기업군의 주가수익률은 코스피 대비 31.2%포인트나 앞섰다. 반면 가장 하위인 E등급 기업들의 수익률은 코스피지수 대비 28%포인트나 낮았다. 기후변화 대응활동, 녹색공급망 관리, 지배구조 등을 평가해 7개 등급으로 구분한 이 조사에서도 지속가능성과는 투자의 성패와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재무자산 비중 83%19%
현대자동차는 ‘삶의 동반자’라는 비전 아래 수년 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가능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전사적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 대비 9% 늘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재활용률(2010년 96%)을 높이는 한편, 폐차 과정에서 다량의 폐기물이 나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단계에서부터 부품 재활용을 고려하고 있다. 폐기물 저감이나 연비 향상이 당초 규제대응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소비자의 비용을 줄이는 고객만족과 연결되면서 경쟁우위를 가능케 하는 차별화 전략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 대부분의 사업보고서는 지나치게 단기 실적과 재무적 측면에 치우쳐 있어 정작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적자산 가치 평가기관인 오션모토가 최근 35년간 미국의 500개 상장기업을 분석한 결과 기업의 재무자산이 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5년도 83%였던데 반해 2009년에는 19%로 감소했다. 재무자산의 비중이 대폭 줄어드는 동안 지적 자산과 인적 자산, 환경대응 능력 등 비재무적 항목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는 재무제표 분석만으로 기업 가치의 많은 부분을 이해했던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이른바 ‘통합보고서’다. 재무상태와 실적 위주의 기존 평가에서 벗어나 경제·환경·사회 등 지속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기업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전 세계 회계감독 및 지속가능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발족한 국제통합보고위원회(IIRC)는 지난해 1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통합보고서 작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통합연차보고서의 등장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경영활동의 경제적 측면과 환경·사회 부문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명 헬스케어 분야의 선도 기업인 필립스는 지난 2월 재무성과와 지속가능성과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연차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앞서 2009년 생산과정에서의 에너지효율 증대와 제품 재활용률 배가를 골자로 한 지속가능 경영전략인 에코비전(EcoVision)을 선포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런 비전은 필립스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해 전체 매출의 약 39%가 관련 활동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보고서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 기업도 늘고 있다. 웅진코웨이는 매년 발표하는 지속가능보고서와 함께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를 통해 재무적 측면과 사회 환경적 요인을 통합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탄소경영 활동을 포함한 체계적인 지속가능시스템을 구축해 협력사에까지 이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올해 발표한 탄소-재무보고서에는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 매출액과 폐자원 수거보상 비용, 탄소 감축 이익 등이 각각 금액으로 표시돼 있어 지속가능 경영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에쓰오일은 환경적 요인을 회계처리에 반영한 이른바 환경회계를 도입해 날로 강화되는 규제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환경회계시스템에서는 모든 시설의 사후처리비용 등 환경 관련 경비를 원가 또는 비용으로 계상하고, 에너지 절약분이나 각종 부산물 판매수익을 이익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환경 비용과 이익의 변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사실 통합보고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였다. 단기적 시각에 기초한 투기적 투자에 대한 반성이 높아지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갖춘 지속가능투자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통합보고서는 단순히 사업보고서에 몇몇 지속가능 요인을 추가한 물리적 결합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진정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는 다양한 요소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창조의 과정이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당장의 실적과 전망에 얽매이기보다 기업 경영활동의 전반을 조명하는 통합보고서를 통해 투자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안목이 필요하다.



강동호 지속가능경영 컨설팅 전문가. 인천공항공사·현대자동차 등 많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자문과 검증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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