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무시하는 한국 음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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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30면

난 음악광이다. 열 살 때 기타를 치기 시작해 열네 살 땐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다. 대걸레 같은 모양의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이라서 어머니와 선생님들이 진저리를 치며 싫어하셨다. 어른들 말이 맞았다. 적어도 내겐 그 머리 모양이 안 어울렸으니까. 불행히도 여자아이도 어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이제 짧다. 예전처럼 열심히 기타를 연습하지도 않는다. 대신 음악을 들으며 대리만족을 한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홍대를 찾아 음악에 빠져든다.

홍대의 음악은 ‘인디’ 또는 ‘언더그라운드’로 분류되곤 한다. 한국에선 ‘인디음악’의 정의가 “성실한 예술가들이 직접 곡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은 안 추는 음악”인 듯싶다. 최근 1~2년만 하더라도 홍대 인디 밴드들이 주류 음악계로 편입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홍대 밴드는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듯하다.

서구 밴드들이 방한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라디오헤드 한국콘서트 티켓은 매우 비쌌고, 잘 팔렸다. 라디오헤드는 실험적인 곡들을 선보일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최근작들을 연주할 듯싶다. 분명한 건 그들이 인천공항을 나설 땐 더 부자가 돼 있으리라는 점이다.

정작 한국의 인디 음악가들이 자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프지 않은가? 외국 밴드를 보기 위해선 10만원을 아낌없이 내면서 굉장한 실력을 갖춘 토종 밴드 공연엔 1만원도 아까워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한국 인디 밴드를 보러 갈 때마다 관객석엔 상당수의 외국인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 토종 음악가들의 MP3 다운로드 역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 곡을 다운받는데 단돈 60원이다. 거저나 다름없다. 일본만 해도 한 곡을 다운로드받는데 2000원가량이 든다. 국제적으로도 한 곡당 1000~1500원이 정상가로 통한다.

물론 이들은 시장에서 정한 가격이다.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국의 음악을 외국보다 값싸고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한국 언론과 정부가 하나같이 K팝에 대해 요란스럽게 홍보를 하고 있고 그 문화적 가치를 과장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K팝조차도 그 인기에 비해 그다지 높은 수익을 창출하진 못한다. 진짜 수익은 하나의 그룹이 브랜드 가치로 굳어지고 광고비와 출연료를 끌어낼 때 만들어진다. 음악 그 자체는 평가절하된다.
한국 록음악의 근원인 신중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라이브 무대가 아닌, MP3만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고 개탄했다. MP3를 통해 듣는 음악은 가볍다. 밴드가 연주하는 라이브 무대를 보고, 음반 가게를 찾아가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60원 주고 MP3 한 곡 다운로드받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울림을 가진 경험이다.

음악이 이렇게 푸대접받는 상황은 음악을 일회용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2년 전 노래는 ‘구식’ 노래가 되고 들을 가치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현 음악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인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그들은 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개 “신중현은 옛날 음악인걸”이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김추자, 박인수, 김정미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의 가수들은 모두 위대한 음악가들이다.

에릭 클랩턴 역시 ‘옛날’ 음악이다. 게다가 내겐 신중현의 음악이 더 훌륭하다. 하지만 에릭 클랩턴이 또 한국에서 콘서트를 연다면 대형 콘서트장은 만석이 될 것이고 클랩턴은 왕족 대우를 받을 거다. 클랩턴이 훌륭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왜 한국인들은 한국 음악을 더 존중하지 않을까.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010년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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