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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피아노 건반처럼,기계의 매혹적인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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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22면

1 1969년 출시된 올리베티 발렌틴(Valentine).빨간색 플라스틱 케이스가 강렬하다.

타자기는 수명을 다한 물건이다. 타자기는 자신의 구실을 컴퓨터에 넘겨준 지 오래다. 그렇지만 전 세계 경매 사이트에서 타자기는 여전히 거래가 활발한 인기 품목 중 하나다. 자판을 치면 타자기 소리가 나게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인기가 꽤 있다. 기능적인 수명은 다했지만, 타자기는 추억의 물건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8> 타자기

초창기엔 속이 다 보이는 우중충한 기계
18세기 초반 영국인 헨리 밀은 눈이 어두운 사람들도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이 기계를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상용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무엇이 타자기 산업을 키웠을까. 소설가같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타자기의 생산을 촉진한 부류는 맹목적으로 글을 옮기는 사람, 즉 타자수들이다. 기업이 늘어나고 사무실 근로자 숫자도 증가하면서, 사장이나 중역들의 말을 문서로 기록하는 속기사와 타자수들도 필요해졌다. 그 수는 전문 작가들의 수를 압도했다. 즉 타자기 산업은 창조가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면서 번창했다. 타자기의 출생 신분은 산업용 기계인 것이다.

생김새도 충분히 기계다웠다. 안쪽의 복잡한 기계장치들을 굳이 숨기지 않고 바깥으로 노출했다. 색은 한결같이 우중충한 은색이었다. 너무나 기계 같아서 사무실보다는 오히려 공장에 어울릴 정도였다. 1900년부터 생산된 언더우드 No.5 타자기는 초창기 타자기의 전형이다. 그 전 타자기들보다 훨씬 진보한 것이지만, 딱딱한 기계 같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시로는 혁신적이며 아름다웠던 언더우드 타자기의 방식은 20세기 중반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타자기 디자인에 큰 변화를 몰고 온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타자기 회사들이 가정용 시장에 눈을 뜬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무환경의 변화다. 우선 가정용이라면 외관도 바꿔야 했다. 1930년대부터 타자기는 휴대하기 쉽게 작아지고 가벼워졌으며 검은색에서 벗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사무환경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1940년대 중반까지 사무실은 사무원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짜내는 데 맞춰져 있었다. 엄격한 노동 효율성이 사무실 디자인의 최고 덕목이었고, 관리자와 평사원들의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2 1961년 출시된 IBM 셀렉트릭(Selectric).“책상 위의 조각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3 1868년 출시된 레밍턴(Remington) No. 1.복잡한 내부의 기계장치들을 그대로 드러냈다.4 1900년 출시된 언더우드(Underwood) No. 5. 20세기 초반 타자기 외관의 표준이 됐다.산업용 기계 같은 이미지다.5 150년 출시된 올리베티 레테라(Lettera) 22.20세기 중반 타자기는 기계적인 외관을 벗고 산뜻한 소비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관리이론이 진보하면서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사무원들이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여겨질 때, 또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에 인격적 유대관계가 형성될 때 오히려 노동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게다가 전후 최고의 경기호황으로 실업자가 거의 사라지자 사무원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직장을 자유로이 이동하기 시작했다.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사무환경 개선이었다. 마치 집처럼 편안하고 친근하게 사무실을 꾸미는 것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허먼 밀러(Herman Miller)와 놀(Knoll) 같은 가구회사의 시스템 오피스 디자인은 현대 사무환경의 표준이 됐다. 쾌적하고 깔끔한 사무환경은 사무직 근로자로 하여금 공장 근로자와 급여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중산층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변화에 따라 타자기 역시 딱딱한 산업 기계에서 사랑스러운 소비재로 탈바꿈한다. 그것을 주도한 회사는 이탈리아의 올리베티다. 올리베티는 20세기 중반의 애플이라 할 만큼 디자인으로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올리베티는 이탈리아의 감각적인 디자인 자원을 충분히 활용했는데, 마르첼로 니촐리는 특히 전후 타자기 디자인의 전형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가 디자인하고 1948년부터 생산된 ‘렉시콘 80’은 밝은 색상의 매끈한 금속 케이스로 타자기의 기계장치들을 감춘 초기 모델이었다. 1950년 생산된 ‘레테라 22’는 더욱 날씬하고 우아한 휴대용 타자기였다. 이 타자기들의 매끈한 표면은 21세기에 애플 아이팟이 보여준 표면 질감만큼이나 신선하고 매혹적인 것이었다. 당시 올리베티의 광고는 ‘타자수를 피아노 치는 연주자’로 묘사할 정도로 타자기를 기계가 아닌 악기와 같은 지위로 격상시켰다.
한술 더 뜬 디자이너는 에토레 소트사스다. 그가 1969년 디자인한 발렌틴 타자기는 강렬한 빨간색 플라스틱 케이스로 감쌌다. 그 인상은 타자를 치지 못하는 사람조차 첫눈에 반하게 만들고 소유욕을 자극하는 힘과 강한 개성이 있었다.

명료한 조각품으로 평가받은 IBM 타자기
미국에서 모던 디자인을 강력하게 후원한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52년 올리베티의 전시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이 전시회를 찾은 IBM의 토머스 왓슨 주니어 회장은 올리베티의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으로 디자인된 사무용품과 일관된 기업 이미지에 크게 고무된다. 그리고 1956년 엘리엇 노이스를 IBM의 디자인 디렉터로 영입한다. 그는 1930년대에 하버드 대학원에서 발터 그로피우스, 마르셀 브로이어 같은 독일 바우하우스의 거장들로부터 건축과 디자인 교육을 받은 철저한 모더니스트였다.

노이스는 미국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들이 추구한 예쁜 스타일링을 거부하고, 영속적이고 일관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가 1961년 디자인한 셀렉트릭 타자기는 그런 노력의 결정체다. 셀렉트릭 타자기는 막대기에 달린 활자가 글자를 찍는 방식이 아니라 88개의 글자가 조각된 골프공 크기의 독특한 활자 구조체가 이동하면서 타이핑하는 혁신적인 전동타자기다.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부드럽게 처리한 외관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노이스는 첨단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멋진 사례를 남겼다. 그가 주도한 IBM의 타자기 디자인은 올리베티만큼 반짝거리지 않는 대신 명료한 조각품으로 평가받았다. 셀렉트릭 타자기가 채택한 키보드와 플라스틱 케이스는 이후 IBM의 컴퓨터에 적용되었고, 70년대 사무기기들의 전형이 됐다.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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