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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서남표 리더십, 네 번째 사퇴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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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명 이사장(左), 서남표 총장(右)

13일 대전시 유성구 KAIST. 방학 중인데도 젊은 과학도들이 도서관과 연구실 등에 삼삼오오 모여 서남표(74) 총장 거취 문제를 얘기했다. 20일 열리는 대학 이사회(이사장 오명)가 서 총장의 총장직 계약 해지 안건을 처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이 술렁인 것이다. 서 총장은 2014년 7월까지 4년 임기 중 2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총장 임면권을 가진 이사회가 그의 독선적인 운영과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며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원생은 “서 총장과 교수들이 몇 년째 대립하고 있어 젊은 과학도로서 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학본부 옆 창의학습관 외벽엔 ‘서남표 총장 물러가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는 대학교수협의회가 걸었다.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서 총장의 일방적인 학교 운영이 교수들에게 신뢰를 잃었다”며 “총장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총장은 이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임면권을 가진 이사회가 (나를) 해임하면 될 텐데 명분이 없으니까 계약 해지라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는 16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KAIST 이사회의 한 이사는 “국내 최고의 과학도들이 모인 캠퍼스가 총장과 교수들의 대립으로 연구 분위기가 완전히 망가졌다”며 “결국 최종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는 이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2006년부터 6년간 KAIST를 이끌어온 서 총장은 그동안 영어 강의 도입, 성적 부진 학생 등록금 징수제, 교수 정년 보장 심사 강화 등을 시행해 대학가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교수들과 소통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약하며, 독불장군식으로 학교를 이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서 총장이 KAIST 41년 역사상 유일하게 연임(2010년 7월)한 배경에는 당시 이사회가 ‘친(親)서남표’ 인사로 꾸려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의 연임에 우호적이던 정문술 당시 이사장은 총장 선출 방식과 이사 교체를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충돌하기도 했다. KAIST는 정부출연기관이어서 정부 관료가 이사로 참여하는 등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서 총장이 사퇴 기로에 선 것은 2010년 연임 과정, 지난해 봄 학생들 자살 파장, 올 1월 교수협의회의 총장 해임 촉구 결의에 이어 이번에 네 번째다. 서 총장과 교수들 간의 신뢰는 사실상 회복이 어려운 지경에 접어 들었다는 지적이다. 올봄 교수협의회는 ‘서 총장이 특정 교수의 특허를 자기 것으로 빼돌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서 총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교수 등 교직원 4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여기에 오 이사장이 ‘계약 해지’ 카드를 꺼내면서 서남표 리더십은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이사회가 해임 대신 계약 해지 방식을 내놓은 것은 해임과 달리 계약 해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사회 멤버는 16명이다. 올봄 임기(3년)를 마친 이사들이 교체되면서 서 총장에게 비우호적인 이사가 10명이 넘는다.

 이사회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서 총장은 90일 뒤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서 총장 측은 “총장직 계약서에 ‘일방적인 계약 해지 시 손해를 배상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특히 남은 2년 임기에 받게 될 연봉 8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보상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며 반발했다. 서 총장 연봉은 36만 달러(약 4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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