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마르코 폴로, 마가렛 미드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56쪽, 1만2000원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얼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하 『읽지 않은…』)을 떠올릴 터다. 그렇다. 정신분석학을 문학비평에 적용해 충격적 결론을 끌어냈던, 바로 그 프랑스 8대학 문학교수가 쓴 책이다. 바야르 교수는 사실 국내 독자들로부터 독특한 대접을 받는다. 베스트셀러도 아니고, 세계적 석학도 아니면서 6번째 책이 소개되는 것은 그에 매료된 독자층이 엄존함을 보여준다.

 2008년 소개된 『읽지 않은…』은 독서에 관한 고정관념을 깼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했다. 독서와 비독서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엄숙주의를 벗어나 ‘총체적 독서’란 신개념을 소개하면서 독서의 수준은 정독 여부를 떠나 그 내용의 파악 정도로 구분된다는 대담한 주장을 폈다.

 이 책은 전작의 속편 격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 보지 않은 곳, 대충 지나친 곳, 귀동냥한 곳, 잊어버린 곳을 들며 『읽지 않은…』과 똑같은 체제를 취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 머물러야 여행지를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 주인공처럼 선실을 벗어나지 않고 대충 본 것도 삶의 교과서라는 여행을 한 것인가 등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그렇다. 장소를 이동하는 물리적인 여행은 시각적 의미에서 방문지를 보게 해주지만 그것을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주관적 주장도 그렇다.

 그런 ‘기시감’을 덜어주는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가보지 않고 쓰인 다양한 책들을 특유의 어조로 분석한 대목들이다. 그 유명한 만리장성도 거론하지 않고, 코끼리를 낚아채 난다는 안다만섬의 괴조를 묘사하는 등 허구투성이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다른 문화에 서구인들의 고정관념을 바꿔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 장점이 있다는 식이다.

 사모아섬의 풍속을 상술해 한때 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혔지만 실은 미국인 가정에 머물며 간접 취재한 사실로 비판받은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책에 대한 평가도 의미심장하다. 지은이는 미드가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죄책감과 성의 자유가 심각하게 충돌하지 않는 균형 잡힌 청소년기를 만드는 목가적 사회를 그림으로써 미국 교육의 폐해를 보여주었다며 미드의 ‘사모아 소설’은 유익한 픽션이라 꼬집는다.

 ‘방콕 여행’이라 불리는 비(非)여행은 꼼짝 않고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저자가 상상하는 장소들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하는 것이란 지은이의 주장은 풍성한 예문이 뒷받침되어 유쾌하고 신선하다. 단 ‘실용적’ 제목에 혹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에두아르 글리상·살마나자르·카를 메이 등 낯선 작가들이 등장하기에 더욱 그렇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