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 히데아키 〈그와 그녀의 사정〉

중앙일보

입력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대성공을 거두고, 그때까지 가이낙스에서 제작해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최신판 판권이 엄청난 값에 팔리고, 에바를 포함한 가이낙스 제작 애니메이션이 연이어 게임화가 되면서 떼돈을 벌게된 안노 히데아키 감독 소속 가이낙스가, 에반게리온 이후 손을 댄 TV판 애니메이션이 바로〈그와 그녀의 사정〉이다.

〈그와 그녀의 사정〉은 지금까지의 가이낙스의 작품과는 달리 원작이 따로 존재해 있다. '하나토 유메'(꽃과 꿈)이라고 하는 일본 최 정상급의 순정만화 잡지에 연재 중이던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제작이 발표된 당시까지도 미완성이었다.(현재까지도 연재 중)

또 지금까지의 가이낙스의 작품답지 않게 액션이나 SF적인 성격이 없다. 〈톱을 노려라! 건버스타〉,〈신비의 바다의 나디아〉,〈신 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우주 전쟁이니 미지의 적이니 하는 것과는 달리 순수한 러브코미디 노선을 이루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완벽한(허영이었지만) 소녀, 미야자와 유키노와 진짜로 완벽한 소년, 아리마 소이치로의 순수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가이낙스 작품과 확연히 다르다.

이 작품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나, 홍콩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향권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무엇보다 가이낙스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신 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린 가이낙스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이낙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매니아들을 흥분시켰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 있는 케릭터들이 그 재미를 증가시켰다. 주인공 유키노나 소이치로는 물론 여자 매니아의 아사바, 언니를 생각하는 귀여운 동생인 츠키노와 카노, '딸 사랑'과 '오직 딸'을 모토로 사는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 그리고 기타 등장인물인 츠바사, 미호, 사쿠라 등등의 특징 있는 케릭터가 줄줄이 등장한다. 그러한 케릭터들이 보여주는 개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한다. 어느 정도 웃기는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그렇다면 〈안노 히데아키〉적 문제 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그의 특기인 복선 깔기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 특징은 여전히 남아있다. 소이치로와 그 가족을 통해서 가정문제와 마음을 닫은 학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유키노와 소이치로의 연애를 통해 요즘 청소년의 이성관계를 다루었다. 또 미호와 유키노의 관계를 통해 이지메 현상까지 다루고 있다.

가이낙스답게 이번 작품에도 복선을 잘 쓰고 있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이번에는 전작인 에바보다 알기 쉽게 되어 있다. 신호등, 비, 수도 꼬지, 교통표지판, 배경음악, 그림자, 유리창, 철로의 차단기 등등에서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보고 있으면 '아, 가이낙스다운걸'하고 느낄 수 있다.

전작에 비해서는 대상 연령을 낮추었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수준 낮은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순정 만화다운 밝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다들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인 것 같다.
요즘 웃기는 애니메이션을 못 보았다는 사람에게는 꼭 권해주고 싶은 애니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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