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E의 공포’ 밀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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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채금리 상승으로 유로존 경제위기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주요 기업의 ‘실적 쇼크’ 전망까지 나오면서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최대 1000억 유로 규모의 스페인 구제금융 지원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채 매입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왼쪽)와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 로이터=뉴시스]

미국 기업의 성적 발표 시즌이 다가오자 월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알루미늄회사 알코아를 시작으로 속속 발표될 미국 기업의 2분기 실적이 ‘어닝 쇼크’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라고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9일(현지시간) 전했다.

‘E(earnings·기업 실적)의 공포’가 시장을 누르고 있다. 2분기 미국 기업 실적에 먹구름이 낀 건 유럽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에 포함된 미국 500대 기업의 매출 중 14%는 유럽에서 나온다. 그런데 올 들어 유럽시장은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이탈리아까지 번진 재정위기로 죽을 쒔다. 연초 살아나는 듯했던 미국 국내 경기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다시 얼어붙고 있다.

 S&P캐피털IQ 설문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는 S&P 500대 기업의 2분기 이익이 1년 전보다 1%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2009년 이후 미국 증시 랠리를 이끌어온 두 축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경기부양책과 미국 기업의 실적 호전 가운데 한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9일 첫 테이프를 끊은 알코아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2분기 주당 6센트 순익을 올려 전문가 예상치(5센트)를 웃돌았다. 다만 지난해 같은 기간 32센트 이익을 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알루미늄은 자동차·항공기 등의 산업재료로 쓰여 제조업 경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개별 기업으로 들어가면 성적은 크게 엇갈릴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사망 후에도 흔들리지 않은 애플은 2분기에도 깜짝 실적을 발표할 공산이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해 2분기 성적이 워낙 나빠 올해 성적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나스닥에 상장한 페이스북의 2분기 실적에도 월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성적이 신통치 못하다면 투자자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파생상품 투자로 20억 달러의 손실을 낸 JP모건의 성적표도 관심사다. 뉴욕타임스(NYT)는 JP모건의 손실이 9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증권가에선 2분기 코스피 기업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 또 애널리스트는 모든 업종에서 영업이익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이익의 약 40%를 차지하는 반도체와 자동차는 수출 위주의 업종이다. 미국 등 세계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경수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세계 경기가 나빠지고 있어서 실적이 좋아지는 국내 업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그나마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라 이익률이 좋아진 철강·자동차부품과 정유·화학 업종 정도만 이익이 늘 것”이라고 했다.

 현재로선 ‘어닝 쇼크’를 상쇄해 줄 구원군은 각국 중앙은행뿐이다. 특히 미 Fed는 이달 31일~8월 1일에 걸쳐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연다. 이번 회의에서 Fed가 시중에 직접 돈을 푸는 ‘3차 양적 완화(QE3)’ 조치를 내놓을지에 전 세계 이목이 쏠려 있다.

 회의를 앞두고 Fed의 고위 정책당국자가 잇따라 경기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와 시장을 들뜨게 했다. 특히 FOMC 이사인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아이다호주 쾨르달렌에서 열린 아이다호·네바다·오리건주 은행협회 공동회의에서 “Fed가 추가 행동을 해야 한다면 가장 효과적 수단은 3차 모기지(주택담보)채권 매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Fed가 QE3를 단행한다면 최근 중국·영국·유럽 중앙은행이 잇따라 내놓은 경기부양책과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으로 월가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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