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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 최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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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나연이 9일(한국시간) 14년 전 박세리가 우승했던 똑같은 장소에서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8년 당시 맨발 투혼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선물했던 박세리(왼쪽)가 우승을 확정 지은 최나연에게 달려가 격려하고 있다. [콜러(미국 위스콘신주) AP=연합뉴스]
최나연

1990년대 말 경기도 오산의 시골 마을. 초등학생 최나연은 겨울밤이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오면 최나연이 쪼르르 달려나가 기름을 넣었다. 주유소 사무실에 있는 난로는 아주 유용했다. 겨울 한기를 없애줄 뿐만 아니라 고구마를 구워 먹기에도 좋았다. 고구마가 놓여 있는 난로를 앞에 두고 웨지샷 연습도 했다. 아버지 최병호(46)씨는 건너편에서 글러브로 공을 받았다. 공을 잘 띄울 수 있어야 훌륭한 선수가 된다고 생각해서 만든 부녀간의 즐거운 게임이었다.

 최나연(25·SK텔레콤)이 9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파72)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1오버파를 친 최나연은 합계 7언더파로 양희영(23·KB금융)을 4타 차로 따돌렸다. 최나연은 10번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한 뒤 12번 홀 깊은 러프에 들어가 다시 위기를 맞았다. 다른 선수라면 벌타를 받고 공을 옮겨놓아야 할 고약한 곳에서 최나연은 그냥 공을 쳤다. 어릴 적 난로 앞에서 하던 웨지 게임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웨지로 부드럽게 공을 띄워 그린에 올리고 파를 잡아내면서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다.

 대회가 열린 블랙울프런 골프장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35·KDB)가 우승했던 코스다. 한국의 금융위기 돌파를 상징하는 맨발의 투혼 우승이었다. LPGA에 수많은 세리 키즈를 불러들인 성지이기도 하다. 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현장에서의 우승은 기념비적이다. 최나연은 지난해 LPGA 투어 한국(계) 100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세리를 롤 모델로 삼아 골프를 시작한 선수’로 ‘세리 키즈’를 정의한다면 최나연은 세리 키즈는 아니다. 최나연은 1997년 12월 22일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 그날 “한번 해 보겠다”며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여자지만 머리를 기르는 건 운동선수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치마를 입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나연은 “한번 칼을 뽑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내 성격”이라고 했다. 최나연은 오빠와 프로레슬링 놀이를 하면서 컸고(대부분 이겼음), 동네 남자아이들 줄을 세워놓고 씨름을 하던(역시 대부분 이겼음) 왈패였다.

 최나연은 신지애(24·미래에셋)와 비교되곤 한다. 주니어 시절까지는 최나연이 ‘지존’이었다. 프로가 되어 둘의 입지는 바뀌었다. 신지애는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최나연은 2위 징크스에 허덕였다. 다시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를 최나연은 이렇게 본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는다. 내가 최고가 아닐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신지애나 청야니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만족했고 좌절하지 않았으며 그러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아버지 최씨는 최나연의 그런 마인드를 자율 골프 덕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연습장 몇 바퀴를 돌게 한 것 말고는 한 번도 딸을 혼내지 않았다. 골프를 좋아하게 했고 스스로 하게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열정을 잃지 않고 골프를 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자립심도 길러줬다. 다른 아이들처럼 전지훈련장에 따라가지 않았다. 5학년 때는 혼자 인도네시아에 있는 훈련캠프에 가게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혼자 이겨낼 힘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최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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