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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유명한 한국인은 박정희와 이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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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제 막 민주화의 길로 시동 건 나라, 미얀마. 우리에게는 옛 국명 ‘버마’가 더 친숙하다. 그동안 몇 차례의 민주화 시위가 결실을 맺지 못한 게 반드시 군부의 탄압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인 주재원이 현지인에게 “독재하며 호의호식하는 특권층이 밉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들은 전생에 덕을 많이 베풀었을 것”이라고 답하더란다. 다시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나”라고 물었더니 “그런 사람은 내세에 가축으로 태어날 것”이라더란다. 느긋한 불심(佛心). 그래서인지 사람은 물론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들조차 표정이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개발독재의 주역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김해용 주미얀마 대사는 미얀마인이 잘 아는 한국인으로 박정희·이순신·주몽·왕건·대조영을 꼽았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최수종(왕건·대조영)·송일국(주몽)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젊은 여성들은 구준표(꽃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지만 지도층일수록 애국적인 역사인물에 더 매력을 느낀다. 박정희의 경우 ‘조국을 가난에서 구한 군 출신 영웅’으로 부각돼 있다. 박정희 등 5명이 모두 장군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 힌트가 엿보인다. 군의 영향력이 막강한 미얀마인지라 같은 군인에게서 동질감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덕분에 2009년 출간된 오원철(84) 전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의 영문 회고록 『The Korea Story』가 미얀마 정·관계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더 널리 읽히기 위해 미얀마어 번역도 추진 중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 야전사령관’이던 오 전 수석은 책에서 경제개발형 지도자의 덕목으로 개척자 정신, 솔선수범, 뚜렷한 국가전략, 추진력, 인간적인 덕과 정을 들었다. 한국은 미얀마에 박정희 정신만 수출한 게 아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물고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 시골 지방 타가야의 직업훈련원은 KOICA에서 230만 달러를 지원해 세워졌다. 미얀마 젊은이들이 1960~70년대 한국 젊은이처럼 전기·전자·기계 등을 배우고 있다. 이론 30%, 실기 70% 과정이다.

 이 훈련원에서 딱 한 가지를 보고 나는 미얀마의 앞날을 낙관하기로 했다. 모든 시설·기계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제도용 책상에는 ‘60만 차트(약 730달러)입니다’, 건물 벽에는 ‘이 건물은 5억 차트입니다’라는 식이다. 다른 나라의 돈으로 공부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하자는 각오가 느껴졌다. 불과 50년 전 미얀마는 한국에 쌀을 원조해주던 나라였다. 이제 한국이 미얀마를 돕는다. 이 정도 나라를 만들어준 위 세대가 새삼 고맙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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