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리고 편 가르고 … 또 도진 총장선거 고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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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일 전남대 교수들이 광주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전날엔 전남대 본교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총장선거와 관련한 잡음 때문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5월 치러진 전남대 총장선거에서 금품이나 향응이 오갔다는 제보가 대학 내부에서 들어와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모범이 돼야 할 대학 총장선거가 각종 의혹과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급기야 선거 부정 의혹을 밝히기 위해 검찰이 나서야 할 만큼 혼탁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전남대 관계자가 했다는 제보는 ‘총장선거에서 1위 후보자로 선출된 박창수(59·의학과) 교수가 다른 교수들을 대상으로 향응을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내부 제보는 총장선거를 둘러싸고 학내 구성원 갈등이 그만큼 컸다는 걸 보여준다.

 전남대는 1700여 명의 교직원이 선거로 총장을 뽑는데 지난 선거에는 무려 10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후보가 많은 데다 선거 기간도 2개월이나 돼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며 “선거 과정에서도 후보들로부터 식사를 제공받았다는 식의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유사한 후폭풍을 겪은 대학들은 또 있다. 후보자가 선거에서 뽑히고도 부정 사실이 드러나 총장이 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부산대는 지난해 9월 총장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던 정윤식 교수가 부정 선거 논란에 휩싸여 벌금 400만원(교육공무원법 위반)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정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임용제청을 거부당했다. 정 교수를 포함해 후보로 나섰던 6명 중 3명이 불법에 연루돼 중도하차했다. 부산대는 결국 선거 두 달 뒤에 다시 선거를 치러야 했다.

 총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은 전남대처럼 총장을 직선제로 뽑는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국대는 이달 하순에 총장을 새로 뽑는다. 전임 김진규 총장이 사생활 문제로 교수협의회, 교직원노조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5월에 물러난 데 따른 것이다. 건국대에선 교수·직원·학생 등 49명으로 구성된 총장선정위원회에서 총장 후보를 압축한다.

 대학 관계자는 “10~20명의 교수가 총장 후보 등록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자기에게 우호적인 인사들을 선정위원회에 넣으려는 경쟁이 벌써부터 치열하다”고 전했다.

 25일 총장 선거를 실시하는 숙명여대는 한영실 총장과 반대파인 재단 측 후보들 간의 갈등으로 학교 전체가 분란에 싸여 있다.

 총장이 선출된 이후에도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달 신구 부총장을 총장으로 선임한 세종대에선 교수협의회가 ‘주명건 명예이사장이 총장을 내정했다’는 성명을 내 학내 갈등이 빚어졌다.

 사실 총장선거 시기가 아니더라도 갈등은 상존한다. 5월 서울여대에선 내년 2월에 임기가 끝나는 이광자 총장이 4선 연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자 교수협의회가 반대 성명을 내고 시위를 벌였다. 이 총장 측이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논란은 진정된 상태다.

 총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을 줄이기 위해선 총장선거 과정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주립대에선 총장선출위원회가 대학 구성원 외에도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총장 후보감을 추천받기도 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자체적으로 총장선거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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