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마당에 애기감이 투둑 계절이 또 들고나는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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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여름 한옥 마당에서 고무풀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조정구씨 아이들 모습. 막내는 포토샵으로 수영복을 입혔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사진 여러 장을 찍어 한데 이었다. [사진 구가도시건축]

투 둑 탁~ 탁, 밤톨만한 감열매가 무성한 잎을 가르고 마당에 떨어진다. 오석(烏石)이 깔린 바닥에 부딪쳐 튕기더니 이내 떼구루루 굴러간다. 선선하고 컴컴한 초여름 밤, 방 안에 앉아 그 소리를 듣는다. 한 켠에 장독대가 있고, ‘ㄷ’자로 처마가 돌아간 마당 위로, 밤의 소리가 무심히 지나간다. 2004년 5월 17일, 17대 총선 날 들어온 우리집 감나무 ‘민주’는 지금 제 열매를 떨어내며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가족은 서대문 사거리 근처의 한옥에 살고 있다. 1958년에 지었으니 나보다 8살이 많다. 듬직한 대들보가 걸린 두 칸 대청에 방들이 크고 넓은 편이다. 마당은 위에서 보면 USB 포트 구멍처럼 길쭉하고 좁아 보이지만, 아래에선 처마와 홈통이 그늘을 드리워 제법 넓고 여유롭다.

 2003년 봄, 큰 아이 세 살 때 이사를 들어와 금방금방 4남매가 됐다. 봄이면 부엌 앞 넓고 긴 쪽마루에 나와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보고, 여름엔 커다란 고무풀에서 물놀이를 한다.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한 홍시가 주렁주렁 달리고, 겨울엔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을 아는 것 같다.

 서대문 사거리에 산다고 하면, ‘아니 거기도 한옥이 있어요’ 하고 모두 의아해한다. 하지만 1950년대, 늦게는 60년대까지 집을 짓는다고 하면 한옥을 짓는 것이었다. 서울시내라 할 사대문 코앞. 전차가 가까이 지나고, 영천시장이란 커다란 장까지 바로 위에 있는 걸 보면, 이곳에 한옥이 들어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집을 나서면 골목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공도 차고, 자전거도 타고, 옆집 꼬마들과 만나기도 한다. 여름 골목엔 능소화가 한창이라 ‘고향촌’ 한식당 처마 위로 주황색 꽃과 넝쿨들이 흐드러졌다. 골목은 원래 양쪽으로 세 집씩, 모두 6집이 뭉쳐 한옥골목을 이뤘다. 지금은 3채만 남고 그 중 둘은 식당이 돼, 한옥을 집으로 쓰는 것은 우리집 하나뿐이다. 집 앞 골목이 50~60년대 사이에 들어선 것이라면, 바로 북쪽에 이웃한 골목은 30년대부터, 그리고 더 위쪽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 다른 시간의 조각을 이어, 동네라는 커다란 조각보를 만들듯 그렇게 조금씩 그 모습을 이루어 왔다.

 사실, 도시한옥은 근대자본과 도시밀집이 만들어낸 가장 효과적인 ‘구축(構築)의 수단’이었다. 1930년대 이후 서울 풍경이 한옥으로 가득하게 된 것은, 어떠한 지형이나 땅 모양, 혹은 서로 다른 가족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며 집-한옥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60년대 등장한 아파트 역시 그러한 점에서 도시한옥과 많이 닮았다.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이 도입돼, 전보다 더 큰 단지와 타운을 만들어 우리 도시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 속에 나타난 그 둘의 차이는 대조적이었다. 한옥이 기존의 지형과 동네의 여건을 수용하면서 작은 범위를 ‘재구축’해 나갔다면, 아파트는 그러한 것을 지워가는 방식으로 리셋(reset) 하듯 ‘재편’했다. 동네가 사라지고 단지가 되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람’도 같이 사라졌다.

 우리 동네에는 다행히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식당과 술집이 늘어나고 있다. 책방이 사라진 지 오래고, 얼마 전까지 있던 치과도 사케주점이 됐다. 뒷집 커다란 한옥이 철거되고 주차장으로 쓰이더니, 이제는 도심형 생활주택을 짓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그나마 식당으로 쓰는 가게들도 앞에는 벽을 세워 한옥지붕을 가리고, 마당은 지붕을 덮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웃 한옥 2채는 곧 5층짜리 주택이 된다고 하니, 한옥에 사는 것이, 벌판에 홀로 선 느낌이다.

 오래되고 소중한 것이 낡아만 가고 사라지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난 가족과 이곳 ‘서대문한옥’에 머무를 생각이다. 마당에 햇살이 들고, 계절을 느끼며, 편안한 골목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진풍경을 100분의 1도 알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재 덕분에 ‘그곳에서 놀고, 먹고, 자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낮만큼 밤도 다름을 알았다. 지금 어디로 가야 할 걱정이 없는 우리집의 한밤은 그래서 속편하고 든든하다.

조정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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