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부동산 붕괴 안온다"의견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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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남편의 해외 근무를 앞둔 김민경(38)씨는 최근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던 분당 서현동 아파트를 시세보다 20% 낮춘 급매물로 내놓았다. 9월부터 5년 이상 호주에 근무하다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 낭패지만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을 판 돈으로 안정적인 월세를 받을 있는 원룸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계획이다. 김씨는 “다른 해외지사 발령자들도 모두 집을 팔고 떠날 계획이라고 들었다”며 “과거 해외지사 근무자는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전세를 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ㆍ수도권 아파트값 하락세가 4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외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주택값 하락세가 장기화하면서 일본처럼 버블 붕괴 상황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든다.

특히 가계부채가 1000조원 이상으로 급증한 데 따른 충격파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주택 보유자들이 상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급매물로 집을 처분하기 시작하면 버블 붕괴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소 박덕배 연구위원은 “지금 국내외 경제 상황, 가계 부채, 인구구조 변화 등 부동산값이 회복될 어떤 요인도 찾기 어렵다”며 “수도권 주택값은 최소 4~5년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대외 경제 여건이 너무 좋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올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4%에 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 등이 전망한 3%대 성장률에 한참 못미치는 수치다.

고령화사회 진입, 베이비부머 은퇴도 본격적으로 경제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 가운데 5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로 2003년(33%)보다 13%포인트 늘었다. 이들은 2005~2007년 부동산가격 상승기에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무리하게 아파트 등을 구입한 경우가 많다.

최근 가계부채 연체율이 늘어나는 건 이들이 산 집값이 하락하면서 가계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 전문가의 경고도 들린다. 일본 중앙은행 니시무라 기요히코 부총재는 최근 한국의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서울 집값은 내리고 지방의 집값은 오르는 것은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에 나타났던 현상과 유사하다.

당시 일본 정부와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이유를 수요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수요만 늘리면 다시 회복될 것으로 믿었지만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며 “과거의 상태가 지속될 것이란 기대를 바리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한다”고 경고했다.

대출규모 컸던 기업이 이끈 일본식 버블과 한국 달라

우리나라가 과연 일본 버블붕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까. 겉으로 보긴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 구조가 달라 일본을 따라가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단 기본적인 경제구조가 다르다. 일본은 버블 붕괴는 기업의 과도한 대출로 인해 발생했다. 기업끼리 서로 지분 출자를 해 무리한 부동산 투자를 하다 상업부동산이 먼저 붕괴되면서 은행에 부담이 됐고 전체 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겪었다.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전영수 겸임교수(일본경제학)는 “일본은 가계의 금융자산이 1500조엔에 달해 오히려 일본 재정적자 등 경제 위기를 막아줄 마지막 보루로 여겨질 정도”라며 “가계 부채 문제로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인 경제 구조가 다르다”고 말했다.

▲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주택 시장 구조가 달라 일본을 따라가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최희갑 교수는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가계 위주로 부동산 투자가 이뤄진 만큼 집값 거품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은행 건전성이 일본에 비해 양호한 점도 일본식 버블붕괴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국내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비율(LTV)을 적용해 집값의 60~70% 이상을 대출해주지 않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까지 적용해 담보대출 규모를 축소했다.

전세 제도가 존재해 버블 붕괴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있다. 임대시장이 월세 구조인 미국, 일본에서는 주택 구입자들의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큰 반면 우리나라는 집값의 50%가량을 전세보증금으로 처리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전세는 대출이자가 필요없는 안정적인 대출 역할을 해왔다”며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 앞으로 대출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현재까지 전세제도가 잘 유지돼 버블 붕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지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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