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 멘토 나선 탈북 신혼부부 12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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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0대 탈북 청소년들의 멘토로 나선 탈북자 신혼부부들이 1일 ‘희망과 나눔의 축구대회’가 끝난 뒤 생활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겨레얼학교에 다니는 장성혁(16)군은 1일 탈북자 누나·형들로부터 선풍기, 진공청소기 등의 가전 제품 세트를 선물받았다. 성혁이도 2008년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탈북자다.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낡은 건물 한 층에 세를 낸 탈북학생 대안학교(겨레얼학교)를 다닌다. 밤에는 이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잔다. 말이 기숙사지 사실은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이다. 연립주택 한 채에 탈북학생 30명이 살고 있어 커다란 방 하나에 20명 정도가 끼어서 잠을 자야한다. 이제 선풍기가 생겼으니 ‘찜통 더위’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 그보다 기댈 수 있는 탈북자 형과 누나가 12명이나 생긴 게 기쁨이다.

 ‘탈북자 멘토-멘티 커플’ 12쌍이 1일 탄생했다. 이날 서울 노원구 인덕대학교에서 열린 ‘희망과 나눔의 축구대회’에선 22~35세 탈북 신혼부부로 이뤄진 통일미래연대 FNK(Free North Korea) 축구단 24명과 7~16살의 겨레얼학교 아이들 30명이 만나 자매결연을 맺었다.

겨레얼학교 학생들은 9명을 제외하곤 모두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 탈북자와 달리 우리 정부로부터 정착, 주거, 의료보호 지원을 받지 못한다. 대부분 편모 가정인데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할 형편이어서 30명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송성풍(14)·성명(12) 자매의 멘토가 되기로 한 임호(27)·최연희(23) 부부는 “한달에 한 번씩이라도 성풍이 자매를 찾아 안아주고, 얘기도 들어주고, 밥도 같이 먹을 것”이라며 “탈북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사랑밖엔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겨레얼학교는 탈북자 출신으론 첫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는 최동현(55)·순영옥(52) 부부가 1년 전 설립한 학교다. 최씨는 지난 2002년 평북 신의주에서 20명의 일가족과 함께 20t급 목선으로 탈북한 ‘보트 피플’의 주인공. 남한 사회에서 10년 동안 모은 4000만원에 교육부에 공모해 받은 2000만원 등을 보태 탈북학생들의 보금자리를 꾸렸지만 정부 지원금이 없어 교사 인건비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결연식은 이 사연을 전해들은 탈북자 신혼부부들이 탈북 청소년들을 돕겠다고 자청하면서 이뤄졌다. 지난 4월 국제로터리 클럽 등의 후원으로 합동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 12쌍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나선 거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생활 필수용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멘토를 맡았다.

통일미래연대 최현준 대표는 “최근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 등이 ‘탈북자는 변절자’라고 말해 많은 탈북자들이 가슴앓이를 했다”면서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들끼리 먼저 보듬고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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