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열풍에 따라 중견연기자들 부각

중앙일보

입력

〈태조 왕건〉,〈여인천하〉,〈홍국영〉등 각 방송사에서 잇따라 대형사극을 방영함에 따라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중견탤런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있다.

호흡이 긴 대사와 개성있는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는 연기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극의 특성상 오랜 연기생활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왔던 중견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

KBS 1TV〈태조 왕건〉(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45분)에서만 해도 눈길을 끄는 연기자가 한둘이 아니다. 주연급 연기자를 제외하더라도 왕건의 휘하에 있는 장수들인 능산역의 김형일, 복지겸역의 길용우, 유근필역의 강인덕, 태평역의 김하균, 궁예 휘하 이흔암역의 최주봉, 견훤 휘하의 공직 역의 이정웅, 최승우역의 전무송등이 사극에 어울리는 장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월드스타' 강수연을 비롯, 전인화, 박상민, 김정은, 박주미 등 젊은 연기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SBS에서 지난 2월부터 방영하고 있는〈여인천하〉(매주 월, 화요일 오후 9시 55분)에서도 중견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정윤겸역의 백윤식, 윤원형역의 이덕화, 당추역의 한인수, 갖바치역의 임혁, 정난정 어머니역의 김영란 등이극 초반부에 등장했던 아역연기자들의 어설픈 연기를 보완해주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들은 발음과 발성에 있어 젊은 연기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장점을 갖췄다. 사극은 한자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만 발음을 잘못하면 다른의미가 돼버리기가 일쑤. 정확한 어휘 구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웬만한 중견들은 대부분 연극 무대를 거쳤던 사람들이어서 발음에 정확도가 있을 뿐아니라 눈앞의 관객들을 상대로 대사를 전달했던 경험은 사극 특유의 굵직한 발성에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고있다.

게다가 이들은 사극에 여러차례 출연해왔기 때문에 연출자의 특별한 주문 없이도 주어진 상황에 맞는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 또한 커다란 장점 가운데 하나.

〈태조 왕건〉의 안영동 책임프로듀서는 "풍부한 경험을 갖지 못한 젊은 연기자들은 대사나 감정표현에 있어 사극이 갖는 중후함을 보여줄 수 없을 뿐더러, 제대로된 훈련을 받지 못해 안심하고 역을 맡길 수 없다" 며 "이에 따라 중견 연기자의 활동영역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연기자들도 젊은이 취향의 현대물에서 그다지 큰 비중이 없는 역할로 등장하던 데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격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것을 매우 반기고 있다.

〈태조 왕건〉에 출연중인 길용우는 "트렌디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절, 주인공의가족관계가 갈수록 축소되는 경향을 보여 중견연기자들이 갈 곳이 없었다"며 "최근각 방송사의 잇따른 사극방영에 따라 연기의 기본을 갖춘 연기자들이 다시 자신의역할을 찾으면서 탤런트실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인천하〉의 백윤식은 "능력있는 연기자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흐름은 바람직하다"며 "시청자의 정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고 말했다.

오는 26일부터 방송될 MBC〈홍국영〉(매주 월, 화요일 오후 9시 55분)에서는 김용건, 송기윤, 현석 등이 출연하게 되며, '대연기자' 최불암도 극의 중반부 이후에 영조로 등장한다. 또 4월 방영될 KBS 2TV〈명성황후〉(매주 수, 목요일 오후 9시 55분)에서는 강부자가 조대비로 등장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각 방송사들의 사극열풍 속에 중견탤런트들의 연기대결도 시청자들의 주요한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최승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