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공무원 뇌물 달라면 줄것"

중앙일보

입력

질서와 법규가 무시되는 사회에서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타인과 사회 전체를 배려하는 마음이 시민이 주인되는 사회의 기본이다.

중앙일보가 원칙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를 제안하며 '기초를 다지자' 시리즈를 시작한 지 58회째. 시리즈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초 생활분야에서 원칙을 지키며 기본을 닦을 것을 제안해왔다.

본사 시민사회연구소가 '기초를 다지자' 특집으로 우리 사회의 질서의식과 준법정신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법무부.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설문 조사와 시민생활 관찰 조사를 실시했다.

준법의식 설문 조사는 최근에 서울을 포함한 6대 광역시의 20세 이상 남녀 1천1백18명을 대상으로 했다.

시민행동 관찰은 삼성전자 후원으로 서울대 김경동 교수팀과 함께 연인원 1백명의 조사원을 투입해 서울.전주.사천의 1백개 지점에서 시행했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신도림역을 향하던 전동차 안.

여섯살쯤 된 여자 아이가 과자를 먹다 과자 조각 하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아이의 엄마는 떨어뜨린 과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10여분 뒤 아이의 손을 잡고 전동차에서 내렸다. 실정법으로는 과태료가 부과되는 쓰레기 투기 행위다.

과자는 이내 승객들의 발에 짓밟혀 부스러기가 됐고, 바닥 곳곳에 퍼졌다. 기본적인 공공질서도 지키지 않는 우리 시민사회의 현 주소다.

본사 시민사회연구소(http://ngo.joongang.co.kr)가
법무부(http://www.moj.go.kr)와 공동으로 최근 서울.전주.사천(서울 50개, 전주 30개, 사천 20개 지점)에서 교통.경제.공공행정.생활주거지.공공시설 분야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 공공질서와 법규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조사에서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무감각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 교통 부문〓지난달 26일 4시간 동안 서울지하철 1~5호선의 다섯번째 차량에 탑승한 승객은 모두 4천3백29명. 이 가운데 노약자가 아닌데도 노약자석에 앉은 승객은 95명이었다.

다른 좌석이 비어 있는데도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층이 많았다.

12개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4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 2천4백10명 중 63명(2%)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안전선을 지키지 않았다.

4개 역 개찰구에서 8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개찰한 시민 9천1백71명 중 무임 승차자가 40명이나 됐다.

전동차 안이나 승강장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거나 바닥에 침을 뱉는 행위도 상당수 관찰됐다.

3개 도시에서 관찰한 결과 오토바이 운전자 4백9명 중 2백86명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질주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경남 사천시 용강 지역. 태권도복을 입은 어린이 6~7명이 오른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같은 시간 횡단보도에서 20여m 떨어진 지점에서 50대 여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를 무단으로 횡단했다. 어린이들보다도 '지킴' 을 모르는 어른들이다.

조사팀의 관찰 결과 전국 3개 지역에서 1천8백41명의 행인 중 16.7%인 3백8명이 차도를 무단횡단했다.

◇ 경제 부문〓서울과 전주의 백화점 세곳에서 6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백화점에 있었던 어린이 6백16명 중 1백72명이 실내를 뛰어다니며 다른 고객에게 피해를 줬다.

백화점 고객 2천3백78명 중 쇼핑카트를 제 자리에 반납하고 돌아간 사람은 64명뿐이었다.

3개 지역의 재래시장 네곳을 10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서로 어깨 등을 부딪치고 사과하는 시민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 공공행정 부문〓3개 지역 관공서 여섯곳에서 민원을 처리한 시민 4백14명 가운데 "빨리 빨리 해달라" 며 공무원에게 재촉한 시민 15명이 발견됐다. 관공서 내에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도 5건이 발견됐다.

◇ 생활 부문〓특정 시간에 주차 차량 1천9백9대를 조사한 결과 지정된 공간 외에 불법주차한 자동차가 5대 중 1대꼴이었다. 장애인 구역에 주차한 10대 중 1대는 비장애인 차량으로 나타났다.

◇ 공공시설〓공중화장실 이용자 1천5백95명 중 용변 뒤 물을 내리지 않는 사례가 4백5건이나 됐다. 4명 중 1명꼴이다.

대중목욕탕에서 수건을 사용한 사람 2백1명 중 절반 가량이 수건을 회수통에 넣지 않고 돌아갔다. 목욕탕에 비치된 수건을 몰래 가져간 경우도 64건이 관찰됐다.

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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