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곱창이 돌아왔다, 성동구청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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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골목의 인기 메뉴 곱창·막창 양념구이. 돼지 내장에 매운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웠다. [사진 성동구청]

서울 성동구 황학동사거리에서 왕십리 쪽으로 뻗은 마장로에는 1990년대 들어 곱창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원래 공구상가가 많았지만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20여 개의 곱창가게가 차지한 것이다. 상인들은 인근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팔고 남은 돼지나 소 곱창, 막창 등을 연탄불에 구워 팔았다. 점포에서 풍기는 매콤달콤하면서도 고소한 기름 냄새에 빠진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처럼 서울의 명소였던 왕십리 곱창골목은 2008년 뉴타운 개발로 일대 건물이 철거되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아쉬움 속에서 사라졌던 왕십리 곱창골목이 부활하고 있다. 원래 곱창골목에서 2㎞ 남짓 떨어진 지하철 왕십리역과 성동구청 일대로 근거지를 옮겨 가게들이 하나둘씩 입점하고 있다. 왕십리 곱창골목에서 이름을 날리던 원조(元祖) 상점들까지 최근 입점하면서 이곳은 ‘신(新) 왕십리곱창골목’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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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서울 왕십리역 2번 출구 앞. 곱창 굽는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온다. 성동구청 맞은편에 줄지어 들어선 곱창구이 가게들이다.

 “대학 다닐 때 일주일에 한 번은 왕십리 곱창골목에 갔 는데 없어져서 많이 서운했어요. 그런데 그 원조집들이 다 이쪽으로 옮겨왔더라고요.” 직장인 김정은(29·여)씨가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점포의 간판마다 ‘원조’라고 적힌 붉은색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현재 구청 주변에 들어선 곱창구이집은 모두 15곳. 20여 개의 업소와 10여 개의 포장마차가 몰려 있던 옛 왕십리 곱창골목에 비하면 규모는 작다. 그럼에도 ‘왕십리 곱창골목이 부활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부산 등에서 포장배달을 시켜 먹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다들 구청 앞으로 이사를 왔을까. 위치 때문이다.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구청 간의 거리가 1㎞ 정도로 가깝다. 지명도 고려했다. 왕십리정부네곱창 주인 오진수(45)씨는 “골목이 사라진 뒤 상인들끼리 회의를 해 ‘곱창골목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고 결정했다”며 “‘왕십리’라는 지명이 들어간 곳을 찾다가 왕십리역이 있는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위치를 옮기면서 변화도 생겼다. 예전엔 길가에서 연탄을 피우고 곱창·막창을 구웠다면 지금은 유리로 둘러싸인 별도 공간에서 조리를 한다. 매캐한 공기로 가득 찼던 식당 안에는 곳곳에 환풍기 등을 달아 위생과 청결에 신경을 썼다.

 1인분에 7000~9000원 정도였던 소·돼지 곱창과 막창의 가격도 물가 상승에 따라 1만1000∼2만원으로 인상했다. 곱창구이·양념구이·야채볶음 등으로 한정되어 있던 메뉴도 곱창전골·주꾸미곱창볶음 등 다양해졌다. 고흥곱창 전춘자(67·여) 사장은 “ 지금은 술 손님뿐 아니라 가족 단위 손님도 많아서 새 메뉴를 추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재득 성동구청장은 “제2의 왕십리 곱창골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구청 앞 곱창골목을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함께 지역 명물거리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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