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장밋빛 환상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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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란 새로운 형식의 데이터 저장방식을 제창했던 컴퓨터의 귀재 테드 넬슨은 『컴퓨터 해방』(74년)이란 책을 출간하며 그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날을 세워야 하는 도끼를 가지고 있다. 나는 컴퓨터가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귀찮은 문제나 인간의 굴종 없이 더 빨리 될수록 더 좋다. "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하기 10여년 전 이미 전문가들은 컴퓨터를 이처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며, 자유와 분권(分權)을 가져오는 '꿈의 기계' 로 간주했다. 가위 인터넷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도 '네트사회' 의 선구자들이 외친 이같은 선언은 상당히 유효하다.

그러나 더불어 분명히 주지해야할 사실이 있다. 그런 믿음과 환상에 점차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창조한 무한대의 사이버공간이 가상 공동체의 장(場)이 되기도 하지만 '악의 근원' 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를 놀래키고 있는 엽기적인 자살사이트의 등장은 그 상징적인 예라 하겠다.

사이버공간이 마냥 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실현할 자유와 해방의 출구라는 시각 또한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정보기술은 정보를 쉽게 수집하여 효율적으로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정보.전자의 '원형감옥(panopticon)' 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들에겐 사이버 중독 증상이 확산되고, 국가간에는 정보의 격차로 인한 새로운 지배관계가 형성된다. 컴퓨터가 탈(脫)계급과 해방의 전령사란 넬슨의 유토피아론은 이제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재작년 타계한 명장(名匠)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는 기계화.비인간화를 다뤘다는 측면에서 이 책과의 친화성이 없지 않다) 제목을 멋지게 패러디한 이 단행본은 앞서 말한 그런 네트사회의 명암을 '열림' 과 '닫힘' 의 구조로 고찰한 인문.사회과학서다.

인터넷 혁명의 장밋빛 청사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런 사회와 문화가 생산할 수 있는 위험요소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갖게한 것은 줄곧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뿌듯함이었다.

인터넷의 역사, 통신혁명의 정치경제학, 사이버스페이스의 사회운동, 사이버법(法)과 윤리, 인터넷과 성(性), 사이버공동체, 정보격차 등 다양한 주제들을 균형있게 짚었다.

그럼 여러 부정적인 요소, 즉 '닫힘' 을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이 책은 인터넷 혁명은 진행형이며 이에 대한 일방적인 고무와 찬양 또는 냉소보다 지식인과 실천가들의 꾸준한 비판적 상호작용만이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아직은 소박한 제안으로 결론을 맺는다.
(홍성욱,백욱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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