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천안 55만원…택시로 알고 탔다 날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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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 요금을 씌운 콜밴 운전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28일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가 압수한 불법 미터기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6일 오후 휴가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태국인 칸(37)은 일터가 있는 충남 천안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6인승 대형 콜밴택시였다. 칸은 지붕 위에 승객 탑승 여부를 알리는 ‘갓등’이 켜져 있어 일반 택시인 줄 알고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운전사 김모(55)씨는 미터기를 보여줬다. 무려 55만원이 찍혀 있었다. 칸은 비싸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44만원을 지불했다. 성인이 인천과 태국 방콕을 왕복하는 데 드는 비행기 티켓은 세금 포함, 최저 38만원. 태국 왕복 비행기 티켓 가격보다 천안까지의 택시 요금이 더 비싼 셈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대형택시로 위장해 불법 영업을 한 콜밴차량 운전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6인승 콜밴 차량의 불법 택시영업을 고발한 본지 기사(2월 10일자 16면, 2월 13일자 18면)의 보도 내용이 콜밴 업계 사이에 만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한 혐의로 6인승 콜밴 운전자 김모(55)씨 등 2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최근까지 인천공항·명동·남대문 등 외국인이 붐비는 지역을 위주로 활동하며 평균 택시 요금의 5~10배에 이르는 요금을 받아왔다. 콜밴 차량은 ‘화물자동차’에 해당해 20㎏ 이상의 짐을 소지한 승객을 태울 수 있지만 짐이 적거나 없는 승객은 태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국인의 눈을 속이기 위해 6인승 콜밴 차량에 택시용 미터기를 불법으로 설치했다. 또 지붕에 ‘갓등’과 흡사하게 생긴 원형 안테나를 얹히고 ‘빈차 표시등’을 차창 앞 부분에 부착했다. 1㎞에 4000~5000원의 기본요금을 설정하고 60~80m에 200원씩 올라가도록 미터기를 조작했다. 모범택시의 경우 기본요금은 3㎞에 4500원, 164m마다 200원씩 올라간다.

 지난해 3월 명동에서 택시를 탄 중국인 양모(40)씨는 영등포구 양평동까지 가는 데 17만1000원을 내기도 했다. 일반택시로는 많아봐야 1만5000원 정도 나오는 거리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미터기를 탈부착 형태로 설치해 단속을 나오면 미터기를 떼어 숨기는 식으로 단속을 피했다. 또 요금 영수증에 실제 차량번호가 아닌 다른 차량번호를 기재해 신고가 되더라도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서울시가 올 들어 집중 단속을 벌이면서 지난해 98건이던 단속 실적이 올해 5월 기준 125건에 이른다. 하지만 불법 택시 영업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6인승 콜밴 차량 968대 중 20%가 넘는 200여 대가 현재 불법 택시로 둔갑해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불법 콜밴택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인승 콜밴이 택시로 불법 영업을 하다 적발돼도 처벌은 운행정지 60일이나 과징금 60만원에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미터기를 달아주는 업체를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불법영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택시로 오인 가능한 표시를 못 하도록 법령에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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