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사진전 '마을 3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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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 펑펑 내리는 눈을 맞는 초가지붕들. 처마 밑으론 어린애 둘이 서있다. 나지막한 돌담 앞의 몽당 굴뚝에선 연기가 무심히 피어오른다.

소 한 마리 겨우 지나갈 농로 옆과 마을 뒤편에 겨울 나무들이 앙상하게 둘러서있다. 눈은 장막처럼 마을을 가리지 않고 다만 풍경처럼 내릴 뿐이다.

1973년 겨울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마을(아래 사진)이다. 소위 예술사진이 아닌 기록사진이지만 보는 이에게 막막함.그리움.쓸쓸함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지붕 물매가 보통 초가보다 급하다.

억새풀 줄기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인 '건새집' 이다. 보기완 달리 한번 얹으면 30여년을 간다는 튼실한 지붕이다.

그 옛마을은 사진 속에만 담겨 있을 뿐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실용적이고 아름답던 건새집은 촬영 이듬해에 생철이나 함석지붕으로 바뀌었고, 지금 그 자리에는 '가든' 이 들어섰다. 근대화.산업화, '잘 살아보세' 의 여파로 이렇듯 우리 곁을 홀홀히 떠나갔다.

"사진은 슬프지 않다. 다만 사진에 화석 같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들이 슬플 따름이다. " (강운구)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4)에서 25일까지 열리고 있는 '강운구 초대전 - 마을 3부작' 은 사라진 마을과 사람들을 담은 추억의 기록이다. 7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 1백여점을 보여준다.

신문기자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강운구(60)씨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사라져가는 것들을 담아두려고 골짜기의 마을을 더듬고 다녔다" 면서 "이 마을들은 이제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으므로 정리해 남겨둬야 할 이유가 생겼다" 고 말한다.

잡지 등에 이미 발표한 사진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촬영할 당시의 생각대로' 모아서 발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말했다.

사진 속 마을은 수분리와 강원도 치악산 입석사 들목의 황골, 내설악 백담계곡 용대리의 세곳이다. 그 때 용대리에선 소나무 널판자로 만든 너와 위에 돌을 얹은 지붕, 고된 노동을 묵묵히 치러온 산꾼의 투박한 손, 눈덮인 산과 골짜기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너와집들, 즉 '산간 무허가 불량주택 10동' 은 79년 한날에 철거됐다.

황골에서도 아늑해 보이는 초가, 어두운 부엌, 남루하지만 화목하게 살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마을 풍경에서건 어린애를 업은 엄마나 누나, 옥수수밭, 갈퀴와 낫, 장작과 가마솥, 검둥개와 닭들처럼 길지 않은 세월 벌써 저 너머 사라진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에 맞춰 사진집 『강운구 - 마을 3부작』(열화당)도 펴낸 작가는 "20여년간 품고 있던 짐을 덜어내게 돼 홀가분하다" 고 토로했다.

그는 "서양 사진 같은 극적이고 다이내믹한 요소는 이 책에는 없다. 나나 대상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을 나의 친구들과 이웃과,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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