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송도고 ‘팔순의 32회 동기들’61년 만의 졸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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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에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받은 인천 송도고 32회 졸업생 26명이 권영섭 송도고 교장(앞줄 왼쪽에서 여덟째)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이들은 6·25 발발과 함께 학교가 있던 개성이 점령당하면서 학적이 소실돼 지각 졸업을 하게 됐다. 앞줄 맨왼쪽이 장명희 대한빙상연맹 명예회장, 앞줄 왼쪽에서 일곱째가 이재은 전 기독교방송 사장이다. [사진 송도고]

25일 인천 송도고교에서는 61년 지각 졸업식이 열렸다. 6·25의 격랑 속에서 학업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던 이 학교 32회 200여 명을 위한 특별한 졸업식이다.

 송도고는 1906년 애국계몽 운동가인 좌옹(佐翁) 윤치호(1865~1945) 선생이 개성에 설립한 학교로 개성의 옛 지명인 송도(松都)를 교명으로 삼았다. 이 날 졸업장을 받은 32회생들은 1945년 4월 이 학교(당시 송도중학교)에 입학, 중학교 6학년으로 1951년 초 졸업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쟁 발발과 함께 개성이 인민군에 점령되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한때 인천상륙작전으로 개성이 수복된 적도 있지만 1·4 후퇴 이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됐다. 송도고교는 1952년 개성을 떠나 인천에서 재개교했다. 이 와중에 32회생들의 학적은 대부분 소실됐다. 졸업식이 지금까지 열리지 못한 이유다.

 전쟁이 터지자 이들 중 상당수는 학도병으로 지원해 전선으로 달려갔다. 32회생들은 ‘개성 군번’으로 불리는 023 군번을 부여받아 일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도 했고 일부는 황해도 일대에서 유격대로도 활약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적은 찾을 수 없지만 군 복무 기록 등에서 재학 사실이 확인된 200여 명의 학적 승인을 해줬다. 학교 측은 선배들의 지각 졸업식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엔 26명만이 참석했다. 평균 연령이 81세인데다 상당수가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학교로 돌아 오지 못한 32회생들은 ‘인우(隣友) 보증’, 즉 대학이 주변 지인들의 증언으로 학력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교육계, 재계 등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에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정우개발 창업주 민석원, 대한빙상연맹 명예회장 장명희, 미국 듀크대 출신 공학박사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기여한 손평래, 기독교방송 사장 및 대한성서공회 이사 등을 지낸 이재은 목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교에서 후배 양성에 힘쓴 이태영·안재혁 교사도 32회 출신이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허강(81)씨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막상 졸업장을 받으니 가슴 벅차다”며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연락이 닿지 않은 친구들을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영섭 송도고 교장은 축사에서 “32회 선배님들은 전쟁의 격랑 속에서 졸업은 못했지만 각계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다”며 “오늘 졸업장을 드리게 되니 모교 대표로서 뿐 아니라 인생 후배로서도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한편 28일 송도고에서는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고(故) 윤영하 소령(72회 졸업)에 대한 10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이 학교는 매년 6월 전교생이 참가하는 추모식을 가져 왔으며 2009년에는 윤 소령의 흉상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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