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빚어낸 엔진 그 위에 써넣은 내 이름 ‘수퍼카의 품격’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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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엔지니어가 완성된 엔진에 AMG 로고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표식을 얹고 있다. AMG 엔진 제작 과정의 ‘화룡점정’이다. 바로 이 표식을 붙이는 과정이 엔지니어들에게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AMG측은 설명했다. [사진 메르세데스-AMG]

이달 중순 독일 남부 아팔터바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AMG의 엔진공장. 벤츠의 고성능 모델 담당 자회사인 이곳에서 9년째 엔진을 만진다는 모리스 바이스가버가 엔진을 조립하는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쌓여 있는 볼트 더미를 손으로만 더듬어 50여 종의 볼트 중 필요한 것을 정확히 찾아냈다. 조립을 마친 뒤에도 엔진을 살피고 또 살핀 다음에야 검사대로 보낸 그는 “이것 때문에 엔진은 꼭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다”며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가 보여준 것은 엔진 윗부분에 박힌 AMG 문장. 거기엔 직접 쓴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AMG는 ‘1사람 1엔진(1 man 1 engine)’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엔지니어 한 명이 조수 없이 혼자서 엔진 하나를 만든다. 당초 엔진 개발 및 튜닝 전문회사로 출발한 데서 나온 전통이다. 지금은 한 엔지니어가 만들기 시작한 엔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이 마무리하고 있다. 아프거나 휴가를 가면 제작을 잠정 중단하고, 그만두면 아예 만들던 엔진들을 폐기하는 식이다. 고성능 자동차의 ‘심장’ 격인 엔진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AMG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AMG 토비어스 모어스(46) 부회장은 “손으로 빚어내는 정교한 엔진은 고성능 자동차를 만드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그래서 AMG는 엔지니어들을 마이스터(명장)로 대접한다”고 말했다.

 AMG 본사의 엔진 기술자들은 모두 63명. 엔진만 만진 지 5~15년 된 전문가들이다. 1인당 하루에 조립하는 엔진이 두세 개밖에 되지 않는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엔진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3~4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독일 남부 아팔터바흐의 AMG 엔진 공장에서 한 기술자가 엔진 윗부분을 조립하고 있다. 벤츠 브랜드의 고성능 자동차를 만드는 AMG에서는 이렇게 엔진을 100%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사진 메르세데스-AMG]

그래서 연간 엔진 145만 개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모회사 벤츠와는 달리 AMG는 1년에 2만5000개 정도만 만들고 있다.

 완성된 수제품 엔진들은 25~30개 중 하나꼴로 9개의 검사코스에서 360시간 동안 검사를 받는다. 냉각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견디는지 점검하는 열검사, 시속 300~350㎞의 속도를 낼 만큼 엔진이 돌아갈 때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보는 최대속력 검사 등이 포함된다. 이 검사에 쓰이는 연료량만 연산 200만L에 이른다. 보통 중형승용차가 2000만㎞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연료량이다.

 AMG는 요즘 영국의 자동차 부품산업도시 브릭스워스에서 포뮬러원(F1) 팀인 메르세데스-AMG-페트로나스와 함께 엔진 및 신차 개발을 하고 있다. 최근 탄생한 제품이 경주용 전기차 ‘E-cell’이다. 레이싱카답게 구석구석에 과열된 부분품들을 식혀주는 냉각시스템을 갖췄다. 차체는 탄소섬유·알루미늄으로 최대한 경량화했다. 무게 500㎏인 배터리를 한 번 충전하면 500㎞를 달릴 수 있다. AMG 측은 “현재 전기차는 한 번 충전 시 60%의 에너지가 날아가지만 E-cell은 단 10%만 손실된다”고 말했다.

 장인정신으로 엔진을 수작업 조립하고, 전기만으로 움직이는 최첨단 전기 경주용차를 개발하는 AMG. 이들이 만든 모델은 일반 벤츠와 뭐가 다를까. “‘안전과 품격’을 중시하는 벤츠에 레이싱카의 ‘짜릿함’을 더했다”가 AMG의 대답이다. 같은 클래스의 벤츠에 AMG가 붙으면 가격이 두 배가 되는 이유다. SL63 AMG 등 최상급 모델은 2억을 호가하는 가격대에도 예약 후 한 달이 지나야 받아 볼 수 있다.

 올라 칼레니우스(43) AMG 회장은 “50주년이 되는 2017년엔 22가지의 차종을 30가지로, 연간 판매량을 3만 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내년 3월에 출시하는 신형 A클래스 ‘A 45 AMG’가 필두다. 구형 A클래스에 AMG의 색을 입혀 재탄생한 2.0L급 모델이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A클래스 중 최상위 모델인 A45는 레이싱카를 기반으로 해 비교적 소형이면서도 경주용차 특유의 운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아팔터바흐(독일)·브릭스워스(영국)=조혜경 기자

메르세데스-AMG  1967년 엔진·튜닝 전문 회사 ‘AMG’로 설립됐다. 이 회사가 튜닝한 벤츠 모델 ‘300 SEL 6.8’이 71년 지금의 F1 그랑프리 격인 벨기에 ‘SPA 24시간 레이스’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300 E 5.6 AMG’ 같은 벤츠의 경주용 튜닝 버전을 만들며 벤츠 브랜드를 소유한 다임러의 주목을 받았다. 다임러는 2005년 AMG의 지분을 100%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현재는 영화 ‘트랜스포머 3’에 나온 스포츠카 ‘SLS AMG’ 같은 벤츠 브랜드의 고성능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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