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최희섭 초구 통타 '150m 3점포'

중앙일보

입력

서서히, 그러나 성난 파도와 같이 '갈색 거인' 의 포효는 시작됐다.

최희섭(22, 시카고 컵스)이 타석에 서 있은 시간은 단 10여초였다. 그에게 날아온 공은 단 한개였다. 하지만 공 하나만으로도 최희섭의 괴력을 과시하기는 충분했다.

메이저리그 첫 공식경기에서 터진 홈런이었다. 비록 시범경기였으나 최희섭은 자신에게 쏠린 스포트라이트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2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 개막전.

6회말 컵스가 2 - 1로 앞선 2사 1, 2루에서 최희섭이 투수 카일리 판스워스를 대신해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마크 가드너였다.

가드너는 지난해 11승7패(방어율 4.05)를 올린 자이언츠 제5선발로 메이저리그 경력이 13년째인 베테랑이다.

가드너의 초구가 몸쪽으로 예리하게 파고 들어왔다. 그러나 몸쪽 직구는 최희섭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코스였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타구는 빨랫줄같이 뻗어나갔고 4천5백여명의 관중은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멍하니 날아가는 공을 쳐다보았다. 우중간 펜스를 훌쩍 넘어간 공은 그대로 야구장 바깥으로 사라졌다. 1백50m짜리 장외 3점 홈런이었다.

한국에서 날아간 최희섭의 이름 석자를 분명히 야구팬들에게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1m94㎝.1백14㎏의 거구를 이끌고 미국 땅에 간 지 3년째다. 그동안 몇차례의 슬럼프를 겪었으나 마이너리그 생활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특히 지난해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의 리그인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최희섭은 타율 0.298, 6홈런(1위), 16타점(3위)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미래의 컵스 최고 거포' 대열에 확실히 포진했다.

현재 시카고 컵스가 붙박이 1루수 마크 그레이스를 방출한 뒤 마땅한 후임자를 못찾고 있는 것도 최희섭에게는 메이저리그로 조기 진입을 가능케 하고 있는 여건이다.

돈 베일러 컵스 감독은 "최희섭은 부드러운 스윙과 파워를 겸비한 타자" 라며 "앞으로도 시범경기에서 그를 자주 기용하겠다" 고 밝혔다.

미국에 간 이후 "성공할 때까진 돌아가지 않겠다" 며 아직까지 고국을 찾지 않았다. 그가 올 시즌 이후 한국 땅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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