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창원 … 화물연대 비조합원 트럭만 27대 불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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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망양리 대성주유소 내 탱크로리와 25t 화물트럭에서 잇따라 불이 났다. 화재는 30여 분 만에 꺼졌다. 주유소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날 새벽 울산·부산·경남·경북 등에선 화물차 27대에서 연쇄 화재가 발생해 수사에 나섰다. [사진 울산소방본부]

24일 오전 2시30분 울산시 북구 효문동 현대글로비스㈜ 주차장.

 자신의 25t 화물차 운전석에서 잠을 자던 정모(41)씨는 차 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온 매캐한 연기에 숨이 막혀 화들짝 잠을 깼다. 놀라 창 밖을 보니 앞타이어 부분에서 시작된 불길이 차량으로 번지고 있었다. 정씨는 급히 차량을 빠져나왔지만 팔에 1도 화상을 입고 연기까지 들이마셨다. 10여 분 뒤 도착한 119 소방대원과 경찰에게 정씨는 “누가 불을 낸 것인지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 ICD 앞에서 화물연대 회원이 운송거부 현수막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돌입 하루 전인 24일 새벽 울산·부산·경남·경북 등에서 화물차 27대가 연쇄적으로 불에 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피해 화물차는 울산 14대, 부산 3대, 경북 경주시 5대, 경남 창원시·함안군 5대 등으로 모두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차량이다.

 앞서 화물연대는 지난 22일 ▶표준운임제 도입 ▶산재보험 전면 적용 ▶운송료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25일부터 전면 운송거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57분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입암충전소 인근에 주차된 16t 화물차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트럭과 화물칸에 실려 있던 벽지가 불에 타 82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났다.

 20분 전에는 울주군 온양읍 망양리 일성운수 앞 차고지 내 탱크로리 차량과 25t 화물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해 1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불은 30여 분 만에 꺼졌지만 불이 주유소까지 옮겨 붙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울산과 인접한 경주시 외동읍에서도 5대의 화물차가 불탔다. 이날 오전 1시17분쯤 외동읍 입실리 7번 국도변 공터에 주차된 10t 트럭에서, 이어 이곳에서 경주 쪽으로 400여m 떨어진 국도변에 세워져 있던 25t 트럭에서 불이 났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역마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공터·도로변에 세워둔 차량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불이 발생할 이유가 별로 없는 타이어에서 주로 불이 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일부 현장 부근의 폐쇄회로TV(CCTV) 화면을 확보해 화재 시간대에 운행한 차량 등을 확인하고 있다. 또 페인트 등 인화성 물질을 현장에서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러나 울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14곳의 사건 현장 중 11곳은 CCTV가 없는 사각지대였고, 나머지 3곳도 고장이 나거나 상태가 좋지 않아 분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범인들이 사전에 범행 현장을 답사하거나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계획적으로 방화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2009년 6월에는 운송거부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포항지부 일부 조합원이 쇠구슬을 장전한 새총으로 운행 중인 트레일러의 운전석을 쏴 유리를 깨뜨린 사건이 있었다.

 화물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화재 사건은 화물연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화물연대가 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건 교섭을 거부하고 파업을 장기화해 물류대란을 조장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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