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부터 철인으로 컸다 … 22살 한국의 ‘벤허’ 허민호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하루에 수영·사이클·달리기를 모두 연습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쉬는 날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조깅은 빠질 수 없는 일상이 됐다. 편히 쉬는 날은 1년에 일주일도 안 된다.

　그러나 경기에 나가면 즐겁다. 힘들었던 훈련의 기억은 스타트 라인에 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진다. 수영(1.5㎞)·사이클(40㎞)·달리기(10㎞), 이 세 가지 종목은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됐다. 경기가 끝나면 살이 쏙 빠질 정도로 힘든 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한 번도 다른 데 눈 돌리지 않았다. 극한의 종목과 사랑에 빠진 ‘철인’은 어느덧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고 세계에서 55명만 나갈 수 있는 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한다.

　한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사상 최초로 런던 올림픽에 나가게 된 허민호(22·서울시청)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선인장 같은 선수다. 지도자나 훈련장 등 제대로 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데다 얇은 선수층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한 우물만 팠다. 입문 과정부터 남달랐다.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수영·사이클·육상 중 하나를 하다 전업했지만 허민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바로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스포츠센터에 다니며 자연스레 세 종목을 접하고 즐기게 되면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에 푹 빠진 소년은 장래 희망을 물으면 “트라이애슬론 선수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어릴 적부터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허민호는 놀라운 속도로 기록을 단축해 나갔다. “훈련은 힘들지만 그때의 어려움은 실전에 나가기만 하면 사라져 버린다. 경기를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즐기는 게 나의 장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른 선수들이 전국체전에 목을 매며 좁은 ‘우물’에 갇혀 있을 때 허민호는 세계 정상이라는 큰 목표를 가슴에 품었다.

　트라이애슬론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됐다. 한국은 허민호의 등장으로 ‘4수’ 만에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허민호의 지금 기량은 올림픽 메달권과 거리가 멀다. 특히 수영·사이클 구간에서는 비슷하게 무리 지어 달리다 마지막 10㎞ 달리기에서 승부를 보는 트라이애슬론의 특성상 세계 톱 선수들과 2분 이상 차이 나는 달리기 실력이 제일 아쉽다. 허민호도 “런던에선 전체 등수보다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아시아 1위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겠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다. 스물두 살 허민호는 앞으로 두세 번 더 올림픽 무대를 밟으면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갈 수 있다.

　허민호의 별명은 ‘벤허’다. ‘허’라는 성 때문에 호주의 트라이애슬론 관계자가 붙여준 이름이다. 갖은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복수에 성공하는 벤허처럼 허민호도 힘들었던 기(起)·승(承)·전(轉)을 지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결(結)’을 꿈꾼다.

정종훈 기자

허민호는 …

●생년월일: 1990년 3월 1일

●체격: 1m76㎝·63㎏

●학력: 구룡초-대청중-충남합덕산업고-동서울대

●현 소속팀: 서울시청

●가족관계: 아버지 허재덕(54), 어머니 이길순(54), 형 성호(35)·준호(33)

●취미: 영화감상

●특기: 축구, 저질댄스

●목표: 아시안게임·올림픽 금메달

●별명: 벤허(성이 ‘허’씨라서 외국 관계자가 붙여줘)

◆트라이애슬론(Triathlon)=선수 1명이 수영·사이클·달리기 3개 종목을 연달아 실시하는 경기로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해 ‘철인3종 경기’라고 부른다. 현재 전 세계 1000만 명 이상의 동호인이 있다. 올림픽에선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트라이애슬론은 코스 거리에 따라 올림픽 코스(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와 철인 코스(수영 3.9㎞,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로 구분된다.